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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불승종 미국 도량, 구곡사 정기법회에서는 묘법연화경의 경전에 있는 관세음보살보문품과 설송큰스님의 실상법문으로 봄(3.4.5), 여름(6.7.8), 가을(9.10.11), 겨울(12.1.2) 4계절 단위로 반복해서 “관음행” 수행을 합니다.
불자들의 수행을 4계절 단위로 반복하는 이유는 계절에 따라 우주 이치에 의해 자연환경이 변하고 따라서 불자들의 생활환경과 마음과 생각과 소망이 달라 질 수 있기 때문에 수행 효과를 높힐 수 있도록 4 계절 동안 3개월 씩 반복해서 수행정진을 합니다.
설송재단 구곡사 도량 정기법회는 매주 일요일 오전 11시, 수요일 오전 11시에 있습니다.
구곡사 도량 정기법회에 참석하지 못하는 불자들께서는 웹사이트에 있는 정기법회 내용을 보시면서 각 가정에서 법회를 하시면 됩니다.
이시(爾時)에 무진의보살(無盡意菩薩)이 관세음보살보문품(觀世音菩薩普門品)의 첫머리를 보면 “이시(爾時)에 무진의보살(無盡意菩薩)이 즉종좌기 (即從座起) 하사 편단우견(偏袒右肩) 하고 합장향불(合掌向佛)하사 이작시언(而作是言) 하사대” 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그때 무진의보살이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 어깨를 드러내고 합장하고 부처님을 향하여 이렇게 말하였다"라고 풀이가 돼 있어요. 무진의보살(無盡意菩薩)이란 우리 인간이 일생 사는 동안 늘 마음을 다해서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얘기하는 것입니다. 고양이가 쥐를 한 마리 잡을 때도 보면 자기의 있는 힘을 다해서 잡습니다. 우리도 하루에 밥 세 그릇을 끓여 먹고 살지만, 그 또한 우리의 모든 노력을 다하면서 먹고 살고 있는 거예요. 그런 것을 무진의보살이라고 합니다. 여러분들이 아무리 많이 알고 여러 가지를 통달했다 하더라도 전부 무진의보살입니다. 이 세상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내일 어떻게 될지, 조금 이따가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른다 말입니다. 그래서 늘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예요. 우리가 바로 앞일을 내다볼 수 있고 또 장래를 알 수 있고 죽는 날까지 알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그게 안보인다 말입니다. 그래서 다만 우리의 모든 마음을 다하고 노력을 다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바로 무진의보살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조심하고 노력해도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거예요. 최선을 다해도 자기 만족을 채울 수 없기 때문에 ‘아, 왜 이렇게 세상이 힘드나? 살기 너무 힘이 드는구나!’ 하면서 한탄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즉종좌기 (即從座起)하사 그런데 즉종좌기 (即從座起)한다는 겁니다.금방 자리에서 일어나게 돼요. 그건 무슨말이냐면, 우리 인간은 무슨 일을 당해 보고서야 알게 된다는 뜻입니다. 당하기 전에 알면 참 좋은데 무진의(無盡意)이기 때문에 한 치 앞도 안 보이잖아요? 그래서 무슨 일을 당하고 나서야 “아이구, 내가 이걸 몰랐구나!”합니다. 잠시 후에 넘어질 걸 미리 알았더라면 피했을 텐데, 그걸 모르고 넘어지고 나서야 “아, 내가 잘못했구나!” 하는 거예요. 이것이 즉종좌기의 모습입니다. 그러니까 즉종좌기 (即從座起)는 자기가 그때그때 맞닥뜨리고 나서야 아는 것을 말해요. 매도 맞아야 아픈 것을 알지 맞기 전에는 아픈 줄을 모릅니다. 그래서 뭐든지 맞닥뜨려본 뒤에 ‘이것이 옳구나.‘ ‘그르구나!’ 하고 알게 되는 것입니다. 맞닥뜨리기 전에는 옳고 그른 것조차도 판단을 못합니다. 뭐든지 진작 알았으면 좋은데,자기 앞에 나타난 걸 보고서야, 일을 당하고 나서야 안다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관세음(觀世音)과 연결이 되어 있으면 미리 가르쳐줍니다. 나중에 깨닫고서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아, 내가 몰랐구나!”하지 않도록 관세음께서 여러분에게 가르쳐주겠다는 뜻이 여기에 들어 있어요. 여러분들도 기도를 열심히 하면, 만약 내일 좋지 못한 일이 있으면 여러분에게 관세음이 가르쳐줄 겁니다. “조심해라. 그건 안 되겠다"하고 소리가 들리는 사람도있고 자기 마음에 즉각 오는 사람도 있습니다. 마음에 ‘아, 가면 안 되겠다'했는데 가보면 좋지가 않아요. 그래서 그렇게 가르쳐주겠다는 말씀을 한 것입니다. 여러분 마음에다 횃불을 비추듯 비춰서 알게 해주겠다 하는 말씀입니다. 편단우견(偏袒右肩)하고 편단우견(偏袒右肩)은 뭘 얘기하느냐면, 우리가 잘한 것은 여러 사람한테 이렇다 하고 내놓고, 잘못한 것은 감춰두는 모습입니다. 아마 내외간에도 그럴 겁니다.남편이 자기가 잘한 거는 아내한테 자랑을 하지만 그날 밖에서 나쁜 짓 한 건 절대 얘기 안 합니다. 그렇게 한쪽에 감춰놓고 잘한 것만 내보이는 것을 편단우견이라고 해요. 그래서 그 잘한다는 소리만 듣고 끌려가는 게 우리 인간입니다. 만약 잘못한 것만 나타나면 못 살아요. 여기 보살님들도 계시지만, 만약 남편이 아내가 잘못하는 것만 지적한다면 한 사람도 같이 살 사람 없습니다. ‘너하고는 못 산다‘ 하고 안 살아요. 자기가 잘한 것만 내놓고 예쁜 것만 보이니까 아내를 거느리고 사는 것이고,어디 갔다오면 잘못한 것은 감추고 잘한 것만 내놓으니까 그 즐거움 에 사는 겁니다. 시어머니가 너무 사나워서 속으로 미운 마음이 들어도 그 앞에서는 싱그레 웃으면서 “어머니, 어서 오세요.”합니다. 그러나 마음 한쪽에서는 ‘아이고, 저 늙은이 또 무슨 잔소리를 하러 왔나?’ 그럽니다. 또 남편도 어디 가서 술 먹고 못된 짓을 하고 왔어도 아내한테 와서는 안 그런 척하고 “그래, 오늘 당신 수고했어“ 이래요. 이런 것이 바로 우리 인간의 죄라는 거예요. 그래서 인간이라면 누구나 다 편단우견(偏袒右肩)하는데, 한쪽에 죄를 묻어두지 않은 사람이 없다 말입니다. 그게 다 없어지면 도인(道人)이에요. 또 살아서는 없앨수가 없어요. 인간에게는 선(善)과 악(惡)이 있기 때문에 한쪽에는 악(惡)이 있고 한쪽에는 선(善)이 있어요. 그래서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도 마음 한쪽에서는 탁 터놓지 못하고 겉으로 가면 쓰고 얘기하는 모습이 있는 것입니다. 편단우견은 바로 그런 것을 얘기해요. 합장향불(合掌向佛)하사 우리 인간이 무진의보살(無盡意菩薩)로, 또 즉종좌기 (即從座起)의 모습으로 그리고 편단우견 (偏袒右肩)하면서 살고 있는데, 여기 합장향불(合掌向佛)이라는 것은 ‘제가 이렇게 부족하니 이제 모든 것을 부처님께 맡기겠습니다. 저의 주장이 되어주십시오'하고 부탁을 드리는 자리입니다. 모두 부처님한테 맡기고 때를 기다리는 모습이에요. 처음에 논에다 벼를 심을 때는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것 같죠? 그렇지만 자라서 김을 매고 길러놓으면 알곡이 열려서 우리가 그것을 먹고 살게 됩니다. 때를 기다리면 되는 거예요. 때를 기다릴 만큼 기다리면 자연적으로 어떤 싹이든지 트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급하게 날뛰느냐, 합장향불(合掌向佛)하고 때를 기다려라 그런 뜻입니다. 여기 모든 사람들도 다 때가 되면 자연적으로 꽃이 피게 되고, 나중에 열매가 맺어서 모습을 나타내면 많은 사람들이 필요한 대로 갖다 쓰게 됩니다. 때가 되기 전에는 아무것도 안 된다하는 말씀이 합장향불(合掌向佛)입니다. 부처님께 모두 맡기고 기다려라 하는 말입니다. 이작시언(而作是言)하사대 이작시언(而作是言)한다는 것은, 누구든지 자기가 말을 지어내서 하는데, 그게 어떻게 될 것도 모르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냥 막 나오는 대로 뱉어놓은 것이 바로 우리의 말이다 그런 얘기예요. 우리는 바로 거기에서부터 실수를 하는 겁니다. 자기도 모르게 한 말이 남한테 상처가 될 수 있다 말입니다. 내가 아무리 상대한테 잘하고 정성을 다했어도 내 입에서 나가는 말이 거칠면 그 말은 가치가 없어집니다. 말을 할 때도 정성스럽게 해야 상대방이 고맙게 듣는 거예요. 우리는 말에서 업보를 많이 짓습니다. 예를 들어 자기가 제멋에 겨워 꽥꽥 소리를 질러놨는데 상대방은 듣기가 나빴다 말입니다. 그럼 업보가 돼서 그 사람 옆에 관세음이 같이 하질 않습니다. 그래서 언제든지 말을 할 때는 목소리를 높이지 말고 조용 조용히 해서 상대방이 기분 상하지 않게 할 때 바로 이작시언(而作是言)이 되는 거예요. 만약 자기가 소리를 꽥 질러 가지고 상대가 기분이 나빠서 피했으면, 그 사람은 자기가 이긴 것으로 알고 기분 좋다고 하거든요. 그런 사람은 부처님 제자가 아닙니다. 그렇게 하면 언제든지 지옥에 갑니다. 여러분들도 그거 하나는 꼭 고쳐줬으면 좋겠어요. 여러분 지옥이 뭐가 지옥인 줄 압니까? 죽어서 가는 지옥은 오히려 낫습니다. 그런 잘못을 하면 우리가 살아서 지옥에 갇힙니다. 무슨 지옥입니까? 옆에 있는 사람이 멀리하고, 나중에는 남의 집에 가서 밥 얻어먹게 되니까 그게 지옥인 거예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첫째 이작시언(而作是言) 에서 조심해야 됩니다. 가능하면 상대방 기분 상하지 않게 말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소리를 지르거나 거칠게 말을 해서 남의 마음을 힘들게 하지 말라 그런 얘기예요. 그건 절대 좋지가 않습니다. 세존(世尊)하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은 이하인연(以何因緣)으로 명(名)이 관세음(觀世音)이닛고 흔히 관세음보살을 얘기할 때 어머니 같다는 말을 하죠? 관세음보살은 바로 우리를 도와주는 자리를 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말씀은 “우리가 어떻게 인연을 지어야 남을 도와주고 살 수 있습니까?” 하는 얘기가 됩니다. “어떻게 해야 내가 남을 도와주고 살 수 있습니까?” 하고 묻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매일 노력하는 것은 바로 남을 도와주고 살려고 노력을 하는 것이죠? 나 살기 이전에, 남을 도와줄 자리가 많다 말입니다. 우선 첫째 부모를 잘 모시면서 도와줘야 되고, 그 다음에 자식도 잘 기르고 해서 도와줘야 돼요. 우리가 맨날 남을 돕기 위해서 열심히 움직이고 있는데, 그래도 마음에는 늘 미흡하다는 겁니다. 자식을 가르쳐도 더 잘 가르치고 싶은데 미흡하고, 뭘 먹여도 더 잘 먹이고 싶은데 그것도 미흡하고, 부모님을 봉양해도 미흡하고 해서 마음에는 항상 부족하다는 생각이 있는 거예요. 그래서 이 자리에서 묻는 겁니다. “제가 어떻게 인연(因緣)을 지어야 어른을 잘 모실 수 있고, 또 자식을 잘 길러서 남에게 떳떳 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들도 다 그런 하소연을 하러 여기 온 거예요. 다른 거 아무것도 없어요. 그것만 제대로 되면 여러분 집안에도 화합이 될 것이고 모든 데 편안함을 얻으실 겁니다.
불고무진의보살(佛告無盡意菩薩)하사대 선남자(善男子)야 약유무량-백천만억중생 (若有無量-百千萬億衆生)이 -부처님이 무진의보살에게 말씀하였다. 선남자여, 만일 한량없는 백천만억 중생이 “불고무진의 보살(佛告無盡意菩薩)하사대 선남자(善男子)야"라는 말은, “너희들이 하도 알기를 원하니까 얘기를 하는데, 그럼 내가 시키는 대로 해봐라. 남을 도와주고 싶은 마음 없는 사람이 누가 있느냐? 형제간에도 못살면 도와주고 싶고 부모도잘 해드리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있다. 선남자(善男子)야. 그런데 너희 행(行)이 안 움직여지는 이유가 뭔지 아느냐? 너희가 이렇게만 하면 반드시 그 행(行)이 움직일 것이다"라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나서 “약유무량-백천만억중생(若有無量-百千萬億衆生)이다. 이 세상에는 백천만억 (百千萬億)의 중생이 있다"하고 얘기가 나왔습니다. 백천만억(百千萬億)의 중생이란, 바로 우리 인간이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백(百)과 천(千)과 만(萬)과 억(億)의 고통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첫째 백(百)이다 그러면, 나한테 뭐든지 백해무익한 게 들어올 때 그걸 이용할 줄 알라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서 냄새가 나는 지저분한 음식이 방에 있으면 거기 들어가기가 싫어요. 그러나 그것을 깨끗이 치워서 거름을 만들어 놓으면 곡식의 열매가 잘 열립니다. 화장실 같은 것도 더럽다고 하지만 그 화장실에서 나오는 거름을 통해서 곡식의 열매가 굵어지게 되는 원리가 있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어떤 사람이 나를 괴롭히려고 들면 그 사람을 잘 이용해 봐라 그런 얘기입니다. 미워하지 말고 잘 대해 주면 나중에는 그 사람이 나를 돕게 됩니다. 그리고 남들이 볼 때 ‘저런 분까지도 이 사람한테 머리를 숙이고 고맙게 생각하는 데‘ 하는 생각이 나면 여러 사람들이 다 같이 그 사람을 존경하게 돼요. 그러니까 남한테 존경을 받으려면 나한테 이롭지 못한 사람이 와서 나를 괴롭힐 때 최선의 노력을 다해서 그 사람을 편하게 해줘라 말입니다. 그러면 그 힘이 생깁니다. 거름을 통해서 곡식이 잘 자라는 것처럼 그런 힘이 우리한테 생긴다 그런얘기예요. 이것이 백(百)의 모습입니다. 그 다음에 천(千)이라는 것은 사람마다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것을 뜻해요.막혀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하는 일마다 술술 풀리는 게 하나도 없습니다. 무슨 일을 하려고 들면 꼭 그것이 제대로 이루어지질 않아요. 남 하는 게 잘되는 것 같아서 내가 해보려고 하면 또 안 되고 그래요. 그게 딱딱 막힌다 말입니다. 처음에 두 내외 만났을 때는 희망도 크고 잘살 것 같았는데, 살아 보니까 백(百)이 쫓아다니더니 그 다음에는 또 천(千)이 쫓아다닙니다. 일생을 한없이 쫓아다니는 겁니다. 누구든지 다 그런 게 쫓아 다녀요. 아마 여러분들도 그런 경험들을 해 봤을 텐데, 사람이 살다 보면 이리로 가서 해도 안 되고 저리로 가서 해도 안 되고 그럴 때가 있습니다. 바로 천(千)의 원리 때문에 그런거예요. 이 천(千)의 고통이 얼마나 심하냐면, 살다가 운이 조금 트일 만하면 그게 와서 감당을 못하게 귀찮게 굽니다. 도(道)도 트일 만하다 싶으면 그게들어와서 못 트게 하고, 또 가장 가깝고 친절한 사람이 바가지 박박 긁고 골치 아프게 만들고 그래요. 아주 양순하고 좋은 사람도 괜히 사람을 트집을 잡고 괴롭혀서 애를 먹게 합니다. 그럴 때는 우리가 어떻게 행동을 해야 됩니까? 나한테 어떤 고통이 오더라도 모든 것을 다 내 잘못으로 돌리게 되면, 그 천(千)의 고통이 무너져 버립니다. ‘내가 뭐를 잘못했기에 부처님께서 이렇게 채찍을 때리시나?’ 하면서 그 고통이 오고 답답할 때마다 오히려 감사를 느껴라 말입니다. ‘부처님 감사합니다. 나에게 잘못이 많아서 이렇게 고통을 주시는데, 좀 더 주셔야 되겠습니다. 그래야 제가 깨닫겠습니다’ 할 때 그 막힌 것이 바로 뚫어져요.이것을 천(千)그래요. 그러니까 우리가 모든 일이 막히고 답답할수록 그것을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큰 고통이 와서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을 때 오히려 ‘부처님 감사합니다‘. 이런 고 통을 주실 때는 부처님께서 부족한 저를 크게 쓰시려고 그러시는 것 아닙니까?’ 하고 감사하게 되면 그 천(千)의 고통은 바로 무너집니다. 그 다음에 만(萬)입니다. 고생이 올해 끝나는 줄 알았는데 또 고생이 오고, 이 고생이 끝나면 저 고생이 또 오고 한없이 나오는 모습입니다. 자식 길러서 대학교만 보내면 되겠다 했는데, 대학 나오고 나니까 장가 들여야 돼서 장가를 들입니다. 장가를 들이고 나니까 인제는 또 손자를 봐줘야 돼요. 이렇게 자꾸 일이 쏟아져나와서 고통을 느끼는 것이 바로 만(萬)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은 일을 하고 나면 또 해야 되는 것이 당연한 건데, 그 일이 더 하기 싫어서 잘라버린다 말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식을 낳는 것이 싫어서 일부러 안 낳기도 합니다. 또 어떤 일을 하더라도 아직 자기에게 더 할 수 있는 힘이 있는데도 ‘그만하면 됐지 뭘 또 해?‘ 이러고 안 합니다. 하기 힘드니까 쉬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자기의 고생과 노력을 버리는 것이 바로 만(萬)의 고통입니다. 그러나 우주에서 그 사람한테 힘을 주고 지혜를 준 것은 그 힘이 있는 동안 열심히 노력하고 움직이라고 준 것입니다. 그걸 하기 싫어하면 우리가 만(萬)의 고통을 무너뜨릴 수가 없어요. 우주가 주는 대로 자기 있는 힘껏 노력하고 나아갈 때 그게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억(億)은 나하고 뜻이 맞지 않는 것을 얘기해요. 이 세상에 내 마음에 드는 것이 없다는 겁니다. 그게 억(億)의 고통이에요. 여기 있는 사람들이 지금 다 억(億)의 세상에 살고 있어요. 자식이 자라서 며느리를 얻어 살아도 며느리 마음에 드는 게 하나도 없어요. 남편도 처음에는 좋았지만 살다 보면 마음에 안 들고 아내도 마찬가지입니다. 친구도 처음 만나서는 좋았죠? 그렇지만 나중에는 마음에 맞지 않는 일이 생겨요. 그래서 뜻이 맞는 친구 셋만 있으면 그 사람은 대인(大人)이라는 겁니다. 그럼 그럴 때 우리가 어떻게 해야 그 억(億)의 고통을 면할 수가 있느냐 이게 문제예요. 각자 뜻이 다른 모습으로 이 세상이 구성된 것인데, 자기 고집만 옳다고 세우면서 ‘내가 왜 네 비위를 맞춰야 돼? 네가 뭔데?’ 하니까 괴로움을 받는 것입니다. 상대가 아무리 나하고 뜻이 맞지 않더라도 어떻게든 그 사람의 뜻에 따라주려고 노력할 때 억(億)의 고통을 안 받을 수 있는 거예요. 그래서 억(億)에서는 나 자신을 돌아봐야 됩니다. ‘나는 누구의 마음에 맞게 살고있나?’ 하고 되돌아보면서 참회하라는 겁니다. 나 자신은 남의 마음에 맞게 살지못하면서 남이 내 마음에 맞추기를 바라서는 안된다는 얘기입니다. 수제고뇌(受諸苦惱)호대 문시관세음보살(聞是觀世音菩薩)하고 일심칭명 (一心稱名)하면 관기음성(觀其音聲)하야 개득해탈(皆得解脫)케 하나니라 그 다음에 뭐라고 나오느냐면, 수제고뇌(受諸苦惱)할 때, 즉 모든 고통이 올 때 문시관세음보살 (聞是觀世音菩薩)하고 일심칭명(一心稱名)하라, 이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이 세상 우주를 보면 별 게 다 있지 않습니까? 뱀이 있지 않나, 가시나무가 있지않나 별 게 다 있습니다. 그런데 저 우주에서는 “너는 가시가 많아서 사람을 괴롭히니까 수분을 받지 마라“ 하고 물 안 주는 법 없고, 밉다고 공기 안 내주는 법 없습니다. 불효자든 효자든 상관하지 않고 이 세상 에서 다 똑같이 먹여 살려주고 있지 않느냐 말입니다. 도둑놈도 깡패도 다 숨쉬게 해주고 밥 먹고 살게 해주는 그런 자비(慈悲)가 이 세상에 움직이고 있는데,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문시관세음보살 (聞是觀世音菩薩)이 될 수 있느냐, 이게 문제라는 거예요. 어떻게 해야 우리가 그 모습을 닮아서 모든 사람을 용서하고 자비를 베풀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겠느냐 말입니다. 여기 보면 일심칭명(一心稱名)하라고 나오죠? 일심(一心)을 가지고 노력해라, 일심(一心)으로 관세음 기도해 봐라, 그러면 관세음보살이 그 음성을 듣고 바로 그 자리에서 모든 걸 해탈케 해줄 것이다 그런 얘기를 했습니다. 그렇게만 하면 다 이루어지도록 해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관세음품을 읽고 기도를 하는 건데, 지금 내가 법문한 대로만 행(行)을 하시면 반드시 관세음의 가피력이 여러분과 같이하실 것입니다.
약유지시-관세음보살명자(若有持是-觀世音菩薩名者)하면 여기 보면 약유지시-관세음보살명자(若有持是-觀世音菩薩名者)하면 설입대화(設入大火) 라도 화불능소(火不能燒)하나니"라고 말씀이 돼 있습니다. 이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지니는 이는 설사 큰 불에 들어가도 불이 능히 태울 수 없다는 뜻인데, 그러면 관세음보살명자(觀世音菩薩名者)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어떤 사람을 보고 우리가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가진 사람이라고 하느냐 말입니다.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가진 사람은, 자기 속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남을 마음대로 생각하지 않는 사람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사람이 부인이 있는 남자를 욕심을 낸다거나, 또는 남편 있는 남의 여자를 욕심낸다거나 하면, 그 사람이 마음먹은 것을 아무도 모르고 보지도 못하지만, 그러나 마음에 나쁜 생각이나 음란한 생각을 품었다면 그 사람은 관세음의 이름을 가진 사람이라고 할 수가 없어요. 자기 혼자 몰래 그런 생각을 하고 ‘누가 알지도 못하는데 어때?’하는데, 그것을 아무도 모를 것 같지만 관세음(觀世音)은 다 압니다. 그런 사람은 관세음(觀世音)의 이름을 갖기 어려워요. 또 남이 잘사는 걸 보고 ‘네가 잘살면 얼마나 잘사나?’이러면서 속으로 비웃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어쨌든 속으로 좋지 못한 생각을 가진 사람에게는 관세음보살의 이름이 있을 수가 없어요. 여러분들이 그것만 꼭지키신다면 반드시 관세음보살이 책임을 져주실 겁니다. 설입대화(設入大火)라도 화불능소(火不能燒)하나니 유시보살(由是菩薩)의 위신력고(威神力故)며 “설사 큰 불에 들어가도 불이 능히 태우지 못하나니 이 보살의 위엄과 신력을 말미암음이니라” 그랬습니다. 그런데 여기 말씀하시는 불이 무엇이냐는 겁니다. 진짜 뜨거운 불길을 말씀하시는 거냐, 아니면 그 속에 다른 뜻이 또 있는 거냐, 이런 문제를 잘 생각해 봐야 됩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가 어떤 사람을 도와주려고 마음을 먹고 가다가도, 불에 타버리면 그 도와주려던 마음이 없어져 버려요. 그 마음이 타버렸으니까 거기 도와주러 갈 기분이 안 납니다. 그럼 ‘에이, 갈 것 없어.’ 이러고 되돌아온다 말입니다. 그런 것도 불에 타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가지고 있으면 그럴 때 자기가 처음 먹은 마음이 불에 타질 않아요. 도와주러 간다고 생각했으면 그냥 도와주러 가지, 가다가 그 마음이 불에 타서 마음이 바뀌는 일은 없다는 거예요. 또 사람이 살다 보면 어느 때는 좋다가도 또 어느 때 가서는 힘든 데 걸려서 고통을 당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뜻하지 않은 사고를 당한다든지, 또는 사업을 잘 하다가도 다 될 만할 때 딱 깨지고 그러는 수가 있습니다. 그런 것이 바로 화(火)가 일어 나서 불에 타니까 여러 가지 고통을 당하게 되는 것인데, 관세음의 이름을 지닌 사람은 그 불에 타지 않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그런 어려움에 맞닥뜨리더라도 절대 불에 타지 않게 해서 이 세상의 어떤 어려움도 다 넘어갈 수 있도록 해주겠다 하는 뜻이 여기에 들어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그냥 입으로 관세음보살만 부른다고 해서 불에 타지 않는다는 말씀은 아닙니다. 바로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가진 사람이라야 그렇게 되는 것인데,속으로 남 미워하지 않고 남의 어려움을 도와줘 가면서 착하게 산 사람, 그런 사람만이 어떤 불을 만나도 화불능소(火不能燒)하게 될 것이다, 하고 말씀하신 자리입니다. 옛날에 어떤 스님이 이 관세음품(觀世音品)을 만 번인가 읽었답니다. 그리고 “내 가 만 번을 읽었으니까 소나무를 갖다 쌓아 놓고 밑에 불을 질러라. 부처님이 불에 안 탄다고 하셨으니까 나는 자신 있다.” 그러고 나무 위로 올라갔어요. 만 번을 읽었으니까 그런 생각을 할 거 아닙니까? 그래 그 스님이 시키는 데로 나무에다 불을 붙였는데, 불이 막 올라와서 몸을 태우기 시작하는 겁니다. 이 스님이 놀라 도망가면서 “내가 아직 관세음 기도가 덜 됐구나“ 이러더랍니다. 그 말씀의 진짜 뜻을 모르는 사람은 그런 어리석은 짓도 할 수가 있어요. 약위대수소표(若爲大水所漂)라도 칭기명호(稱其名號)하면 즉득천처(即得淺處)하며 또 그 다음에는 “만약 큰 물에 떠내려가더라도 그 이름을 일컬으면 곧 얕은 곳을얻게 되며"하고 말씀했습니다. 불은 아까 그런 것인데, 그럼 물은 또 무엇을 의미하겠느냐 말입니다. “큰 물에 떠내려가도"하는 말은, 우리가 물의 기운에 당하는 것을 얘기합니다.물은 인간의 정신을 맑게도 하고 흐리게도 해요. 그래서 어떤 때는 정신이 번쩍 나서 바른 일을 할 때도 있고, 정신이 잘못되어 가지고 다치기도 하고 이러죠? 정신 안 차리면 “정신 차려라!” 그런 말을 합니다. 정신 차리라는 말은, 우리가 남을 미워하거나 해서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가지지 못했을 때 그 물의 기운에 당하기 때문에 하는 말입니다. 물에 당하면 여러가지 손해가 나고 그래요. 사람이 남에게 손해나 끼치고 다니고 이러면 반드시 그 물에 당하게 됩니다. 그래서 수분(水分)의 움직임에 의해서 그 사람에게 풍(風)도 일어날 수가 있고, 여러 가지 병들이 와서 고통을 줍니다. 또 지금까지 착하게 생활하던 아들이 갑자기 바람을 피우고 노름을 하러 다니질 않나, 온갖 몹쓸 짓을 하고 돌아다니면서 속을 썩이는 경우도 있는데, 그것은 부모가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 물의 기운에 당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시어머니를 몹시 미워했답니다. ‘저놈의 늙은이 빨리 죽었으면‘ 하고 늘 미워했으니 그 시어머니가 얼마나 들볶였겠어요? 끝내는 목을 매달아 죽었습니다. 이 며느리도 정상이 아닌 자식을 낳아서 마음고생을 이루 말할 수 없이 해야 했습니다. 잘못하면 그런 문제가 날 수도 있는 거예요. 우리는 어떤 일이 있어도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갖도록 해야 되는데, 지금부터라 도 이 도량에 오는 분들은 절대 남을 미워하거나 욕하거나 싫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안 그러면 여러분이 지금 아무리 잘났다 하더라도 나중에 몸에 병이 생기거나 여러가지 큰 고통이 오게 됩니다. 건강도 건강이지만, 만약에 물이 들어와서 거기에 당하게 되면 집안에 있던 재산같은 것도 다 떠내려갑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줬으면 자식이 그것을 지키지 못해서 물에 떠내려가듯 다 나가게 됩니다. 그러나 만약 그 아버지가 생전에 많은 사람들에게 공덕을 한 것이 있었다면 그 재산이 안 떠내려갑니다. 조금 빠져나가는 건 있어도 크게 손해를 안 본다 말입니다. 조상이 적덕을 많이 했으면 그 재산이 구대(九代)까지도 지켜집니다. 구대조(九代 祖) 할아버지가 관세음(觀世音)을 알았기 때문에, 관세음보살 이름을 가지고 움직였기 때문에 그 재산이 떠내려가지 않고 자손들한테까지 내려가서 유지가 돼요. 그러니까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갖는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그 이름을 갖습니까? 바로 남한테 미운 마음 갖지 않고 모든 것을 용서한다면서 베풀 때 그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가 관세음의 행(行)은 하지 않고 이웃의 어려운 사람을 업신여긴다든지 이랬을 때는 물과 불에서 그런 여러 가지 힘든 일이 생기게 됩니다. 약유백천만억중생(若有百千萬億衆生)이 위구금은유리(爲求金銀琉璃)와 우리가 백천만억중생(百千萬億衆生)이 돼서 갖은 노력을 다해서 이 세상을 살고있는데, 그 구하는 것이 뭐냐 하면 금은, 유리, 차거, 마노, 산호, 호박, 진주 일곱 가지 보배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구하기 위해서 대해(大海), 큰 바다에 들어간다고 했습니다. 우리 인간의 삶은 마치 조각배를 타고서 파도치는 바다를 건너가는 형국과도 같죠? 바다를 건너가면 피안이라고 그래요. 그래서 인생이 피안으로 가는 건데, 그때 뭘 구하느냐면 금은, 유리, 차거, 마노를 구하러 간다 이런 얘깁니다. 그걸 구하기 위해서 고행을 하며 살고 있다는 거예요. 그러면 금은, 유리, 차거, 마노가 과연 무엇이냐 이게 문제입니다. 금은,유리 등을알면 아까 약위대수소표(若爲大水所漂) 그것도 알 수 있는 거예요. 자기가 잘하면 재산이 대대로 내려 가게 되는 것이고, 잘못하면 물에 떠내려가서 그 재산이 다 소용없게 되는 얘기거든요. 금(金) 첫째는 금(金)을 구하려고 바다에 들어간다 그랬는데, 이 금은 우리 인생이 무엇을 위해서 살고 있는 모습을 말하는 것일까요? 이게 쇠 금(金) 자(字)입니다. 쇠도 되고 황금도 되고 그런데, 황(黃)자(字)를 붙이면 누런 금이라 하고, 그냥 금(金)이면 쇠다 이런 얘기입니다. 그런데 금을 구하는게 뭔가? 금을 구하기 위해서 지금 모든 사람들이 다 헤매고 있는 거예요. 여기 있는 분들도 전부 금을 구하기 위해서 살고 있어요. 그 금을 구하러 들어가는데, 마치풍랑이 센 바다에서 조각배를 타고 잇는 것과 똑같은 심정으로 살고 있다 말입니다. ‘금입연로(金入練爐)하니 종성대기(終成大器)라'그런 말이 있어요. 금이 도가니 속에 들어가면 큰 그릇이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옛날에 어떤 신하가 술을 너무 많이 먹어서 맨날 취해 있었어요. 임금님이 보니까 더 이상 안 되겠기에 그 신하에게 술잔을 하나 만들어서 내립니다. 그리고 거기에다가 매일 한 잔씩만 술을 마시라고 명령을 했어요. 그런데 신하가 그걸 가지고 한 잔 먹어보니까 양이 차질 않는 거예요. 그래서 대장장이를 시켜서 그걸 불에다 넣어 가지고 큰 대접으로 만들었습니다. 거기다가 술을 가득 부어 마시고서 또 취한 채로 임금 앞에 갔습니다. 임금이 내 명령을 어기고 술을 몇 잔씩 먹었느냐고 하니까, 그게 아니라고 한 잔만 먹었다고 그래요. 그래서 어떻게 된 일이냐 물어보니 사실대로 얘기를 했습니다. 술잔을 대장간에서 두들겨서 크게 넓혔는데, 그래도 금은 똑같지 않느냐 그랬다는 겁니다. 그래서 임금님도 할 수 없이 용서를 해줬다는 그런 얘기가 있습니다. 불타는 도가니 속에 들어가면 그 금은 마침내 큰 그릇이 됩니다. 그렇듯이 우리 인간도 크게 되기 위해서, 이 세상이 좀 더 낫게 살기 위해서 애를쓰고 노력을 하는 거예요. 그래서 첫째 구하는 것이 금입니다. 명예라든가, 모든 것을 바라면서 열심히 노력해서 큰 그릇이 되려고 하는 것입니다. 또 자식을 낳아도 '이 자식이 큰 그릇이 될까?’ 이럽니다. 장사를 하더라도 이윤을 더 남게 하고 싶고, 또 농사를 지어도 남보다 더 많이 수확해서 큰 농부가 되려고 애를 쓰고, 이런 것이 전부 금을 구하는 모습인 것입니다. 그걸 금으로 상징한거예요. 우리가 땀 흘리고 노력하는 것은 마치 금을 불에 넣어서 달구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 달구는 목적이 뭡니까? 크게, 조금 더 낫게 살고 싶은 생각이 있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다 그래요. 좀더 잘살고 싶고, 좀더 크게 만들어 놓고 싶은 생각이 떠나지 않는 거예요. 그런 인간의 근본 목적을 금의 모습에 비유해서 얘기를 했습니다. 더 나아지고 더 잘되기를 바라는 것 자체를 얘기해서 금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입어대해(入於大海)라고 했거든요. 큰 바다로 들어간다 말입니다. 우리가 바다로 들어갈 때는 온갖 풍랑을 맞이하면서 건너가는 거예요. 바다가 있기 때문에 우리 인생은 고해(苦海)입니다. 그 바다를 건너갈 때 제일 첫 번째 구하는 것이 금(金)이다 그런 얘기예요. 은(銀) 그러면 은(銀)은 우리 인생 사는 데 어떤 모습을 비유해서 얘기했을까요? 금과 은이 비슷한 얘기거든요. 금은 그런 것인데, 은은 또 어떠한 모습을 거기에다가 비유했는지 한 번 생각들 해봐요. 이게 우리 인생 전체에 대한 얘기입니다. 인생 전체가 다 이것 때문에 고해를 건너가고 있다는 것인데, 은은 뭐를 상징했을까요? 흔히 말할 때 은은 건강이라고도합니다. 왜 그러냐면 독약 이라든가 못 먹을 게 닿으면 은수저의 색깔이 죽잖아요.그래서 건강이라고 한 건데, 은은 무엇을 뜻하느냐면 뭔가를 감지(感知)하는 것을 얘기합니다. 그러니까 은 그러면, 우리는 이 세상을 감지하려고 산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감지해야 돨 거 아닙니까? 어디에 뭐가 있는 것을 찾느라고 애쓰는 자리예요. 살기 위해서 찾느라고 애쓰는 자리가 바로 은에 속해요. 사람이 살려면 모든 것을 감지해서 알아내야 돼요. ‘저 사람 속이 뭔가? 저 사람이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나?’ 이러는 것이 은의 모습입니다. 우리 인간은 다 은의 모습으로 살고 있어요. 두 내외 살아도 남편의 생각이 어떤가 눈치보고, 아들 생각이어떤가 눈치보고 그럽니다. 그런 것이 전부 은에 속하는 모습들입니다. 그래서 은 하면 한마디로 말해서 감지하는 것이다 그런 얘기예요. 지금 여러분들은 ‘큰 스님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나?’ 이런 생각하죠? 그게 바로은의 모습이에요. 감지하는 겁니다. ‘저 사람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러면서 살아가는 자리를 은 그럽니다. 첫째 우리가 구하는 것은 금인데, ‘어떻게 하면 좀 낫게 사나?’ 이러다 보니까 감지가 되어야 돼요. ‘저 사람이 뭐를 하려고 드나? 어떤가?’ 이걸 감지해 가지고 노력하고 사는 것이 두 번째 은의 모습입니다. 우리 인간의 속 그대로를 그려놨어요. 그런 것도 관음(觀音)의 가피력이 있게 되면 스스로 알아집니다. 유리(琉璃) 그 다음은 유리(琉璃)입니다. 유리로 땅이 됐다고 하고 유리가 경에 많이 나오는데,유리는 또 어떤 것을 상징했나 생각해봐요. 이런 것은 조금만 생각하면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인간의 생활이거든요. 눈치를 봐가면서 사람의 속을 감지해서 사는 것이 은의 모습이라고 했는데, 그럼 유리는 어떤 것을 얘기하겠습니까? 유리로 된 창으로 바깥을 내다보면, 저기 나무가 있는 것도 보이고 다 보이죠? 그러나 그것을 집어올 수는 없다 말입니다. 유리가 막혀 있으니까 못 들어와요. 그럼 유리는 뭐를 상징한 것일까요? 유리는 바로 소망을 뜻합니다. 사람이 바라는 바를 얘기해요. 세상 일이 다 보이는데 내 마음대로 되질 않는다 말입니다. 그래서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유리로 내다보면 다 보이는데, 내가 가질 수가 없어요. 그래서 소망입니다. 내가 지금보다 잘살 수 있는 길이 눈에 환하게 보이지만, 내 마음대로 그렇게 잘살아지는 게 아니다 말입니다. 이런 유리를 통해서 저 바깥을 내다보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인간이 구하는 것이, 첫째는 어떻게 하면 낫게사나 하는 것이고, 두번째는 눈치를 봐가면서 요령 있게 살려고 드는 것이고, 세 번째는 다 보이는데 내 맘대로 되지 않으니까 소망하는 모습입니다. 바라는 것뿐이에요. 그래서 우리가 가만히만 있어도 다 부자 될 것 같고 다 잘될 것 같지만, 실제로는 자기한테 그게 들어오지 않는다 말입니다. 소망 뿐입니다. 그런 것이 유리의 모습인데, 우리 인간이 바로 그 모습으로 살고 있다 하는 얘기입니다.
차거(硨磲) 그 다음에 차거(硨磲)는 뭐를 상징한 것이고 또 마노(瑪瑙)는 뭐를 상징해서 얘기했나 이것을 알아봐야 됩니다. 차거, 마노는 우리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사는 것을 얘기할까요? 차거도 우리 인간이 그 모습을 가지고 이 세상에 왔어요. 그래서 그 모습을 닮아서 그대로 행하면서 사는 것이 진리인데, 과연 우리 인생의 어떠한 모습을 일러서 차거라고 얘기를 했느냐 말입니다. 차거는 깍지 않은 옥을 얘기하거든요. 그럼무엇을 상징한 건지 조금 짐작이 갈 겁니다. 이런 말은 예수도 많이 썼습니다. 그리고 ‘삼천지교(三遷之敎)라고 해서 맹모(孟母)가 세 번 옮겨 다니면서 맹자(孟子)를 가르쳤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장사하는 데 가서 살았잖아요? 그런데 “뭐 사려!””뭐 사려!” 하고 다니니까, 안 되겠다 해서 옮긴 것이 상여꾼들 있는 데로 갔어요. 그랬더니 맨날 “오하! 오하!”하고 상여 나가는 소리를 하더라 말입니다. 그래서 세 번째로 글방 있는 곳으로 옮기니까 그때부터 글 읽는 공부를 해서 나중에 '맹자님’ 소리를 듣게 됐다 이런 얘기가 전해 집니다. 그런 것도 차거의 원리예요. 이 우주는 전부 차거로 돼 있습니다. 깍지 않은 옥을 차거라고 했죠? 이 세상을 살면서 나의 모든 노력을 다하게 되면 거기서 뭔가가 얻어지고 이루어집니다. 마치 옥을 깎아서 빛이 나는 것과도 같습니다. 그래서 내가 ‘이걸 하면 되겠다‘ 해서 물불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노력하고 일하면서 사는 모습을 차거(硨磲) 그럽니다. 예를 들어서 의학 공부를 하겠다고 생각해서 자꾸 들어가게 되면, 마치 옥이 깍여서 빛이 나오듯 그렇게 의술이 습득이 되고 발달이 돼가지고 아픈 사람을 고칠 수 있는 힘이 생기게 됩니다. 그래서 자꾸 자기가 노력을 하게 되는 거예요. 학생들이 공부하는 데 들어가서 노력하는 것도 바로 이 차거의 원리가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마노(瑪瑙) 그럼 마노(瑪瑙)는 뭡니까? 힌트를 주자면 ‘자국’ 이라고 할 수 있어요. 도장 찎어 놓는 거와 마찬가지라는 얘기인데, 우리가 도장을 한 번 찎어 놓으면 그 도장은 늘 볼 수 있잖아요? 그런 것과 비슷한 원리가 마노입니다. 차거가 자기 목적을 달성하려고 열심히 노력하느라 물불 안 가리고 죽기 살기로 뛰는 것이라면, 그럼 마노는 또 어떻게 살고 있는 모습을 얘기한 것입니까? 우리가 사람을 딱 보면, ‘아, 너는 마노가 어디까지다'하고 짐작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마노가 좀 지나치면 정신이상도 될 수 있고 헛된 짓도 하고 그래요. 마노를 딱 집어서 얘기하면 뭐라고 말해야 될까 한 번 생각을 해봐요. 그것 때문에 사람이 사는 거라 말입니다. 잘못하면 이 마노 때문에 사람을 죽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죽은 영가는 고혼(孤魂)이 되질 않습니다. 사람이 그 마노에 맞아 죽으면 원한귀나 이런 게 안돼요. 다시 화생해서 나왔으면 나왔지 악귀 같은 건 안 된다 말입니다. 사람이 죽어서 원한귀가 되는 것은 자기 할 일을 다 못했을 때 그렇게 되는 것인데, 이건 그거 하고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죽으면서도 이해를 할 수 있다는 거예요. 이해하기 때문에 원한귀가 안 돼요. 마노는 뭐를 얘기하느냐면 바로 권세(權勢)를 뜻합니다. 옛날에 천자(天子)가 되거나 임금이 되는 사람들 보면, 다 권세를 얻기 위해서 서로 경쟁을 합니다. 남들이 해놓은 것을 보고 그 마음이 우러나서 경쟁심이 생기게 마련이에요. 그래서 자기가 권세를 얻기만 하면 사람을 죽여도 상관없다 그러는데, 똑같이 권세를 얻으려고 하다가 상대에게 얻어맞고 죽었기 때문에 당연히 “내가 졌다"하고 항복하는 거예요. 그 사람이 죽어서도 귀신이나 악귀가 안 되는 것은 그런 까닭입니다. 마노를 얻기 위해서 바다에 들어간다 하는 것은, 우리가 바다로 그 권세를 얻기 위해서 살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그것 때문에 서로 싸우게 되고, 심지어는 남을 죽이기도 하는 것입니다. 산호(珊瑚) 산호(珊瑚)는 바닷속에서 자라는 귀한 풀을 얘기해요. 그럼 산호가 어떤 물체이기 때문에 그걸 구하러 간다고 했느냐는 겁니다. 이 산호는 거느리는 것을 뜻합니다. 보이지 않는 데서 식구들을 거느리고 있는 모습이 산호예요. 아들이 어디 갔다, 남편이 어디 갔다, 아내가 어디를 갔다, 모두 들어오고 나가고 하는데, 그것을 지켜주는 역할을 사람마다 다 하고 있습니다. 동기간이든 형제간이든 다 거느리고 있는 역할입니다. 다 거느려서 집안 식구 먹여 살려야 되는데, 그것이 마치 바다에 뛰어들어간 거나 마찬가지다 그런 얘기입니다. 누구든지 자라면 부모를 모셔야 되고, 자식을 거느려야 되고, 또 아랫사람도 거느려야 되고, 이웃도 거느려야 됩니다. 그 모든 것을 거느리고 살려니 얼마나 힘들고 어렵겠습니까? 그 거느리는 자리를 산호라고 얘기했습니다. 호박(琥珀) 호박(琥珀)은 이 세상에 지진이 나고 해서 뒤바뀔 때, 그때 소나무 송진 속에 개미가 들어가서 익어서 굳어진 것을 말합니다. 개미가 송진을 뒤집어쓰고 그 속에 갇혀 있는 것인데, 우리 중생도 그렇게 갇혀서 살고 있는 모습을 상징합니다. 마음 뿐이지 나가지도 못하고 쩔쩔매는 그런 것을 상징해서 호박을 얘기 했습니다. 진주등보(眞珠等寶) 그 다음에 진주등보(眞珠等寶)가 나옵니다. 진주 같은 보배를 얻으려고 애를 쓰는데, 진주는 어떤 것을 상징했을까요? 이것도 역시 인간이 살아가는 모습의 상징입니다. 차거나 마노 같은 것은 어려워서 설명해 주지 않으면 몰라요. 그러나 진주는 아주쉽습니다. 여러분 생각하고 똑같애요. 이거를 풀어보면 ‘아 나한테 하는 얘기로구나 ‘ 하는 생각이 듭니다. 부처님 말씀에 “비가 내리면 큰 풀이나 작은 풀이나 다 똑같이 그 비를 맞고 자란다. 평등이다” 그랬거든요. 이런 것도 다 똑같은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하나 풀어서 죽 얘기를 해주면 ‘아, 나한테 하는 얘기구나'이렇게 생각이 들어갑니다. 그래 진주는 뭐라고 보면 될까요? 우리가 진주로 많이 살고 있습니다. 전부 우리 인생이 사는 모습들이에요. 진주는 조개에 자기도 모르게 흠집이 생겨서 된 보배를 말하죠? 마찬가지로 인간 역시 자기도 모르는 고통을 당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뭐를 잘못해서도 아니고. 자기도 모르는 고통이 들어올 때 그것 때문에 열심히 살게 되는 거예요. 그것을 면하기 위해서 애를 쓰고 사는 모습을 진주라고 얘기했습니다. 자기가 원치 않는 고통이 와 가지고 그러는 건데, 두 내외 만나서 자식 낳고 살 때 그렇게 고생하고 땀 흘리면서 어렵게 가르칠 줄 알았으면 누가 자식을 낳았겠어요? 무자식이 상팔잔데. 그러나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스스로 고통이 와 가지고 그 고통 속에서 살게 되어 있는 것이 우리 인간이다 말입니다. 뭐를 잘못해서 그런 것도 아니고, 다만 자기도 모르는 고통 속에서 살고 있는 거예요. 자기가 무엇 때문에 고생할 거라는 것을 미리 알았으면 그렇게 살지 않았겠죠. 진주 모양으로 자기도 모르게 고통을 당하면서 사는 데서부터 인간이 끝내는 결실을 맺게 되는 것입니다. 그게 진주의 모습이에요. 사람마다 다 자기가 어떻게 해서 이런 고통이 오는지도 모르고 그걸 받는 거예요. 모르고 받지만, 그러나 결국은 좋은 결실이 이루어지는 것을 얘기합니다. 그걸 진주라고 했습니다. 인간이 바로 그렇게 사는 것을 의미해서 진주등보(眞珠等寶)라고 합니다. 그건 누구든지 다 똑같애요. 자기도 모르게 찔리면서 거기에서 진주가 생겨 가지고 빛을 내게 돼 있는 거예요. 알았으면 절대 안 찔립니다. 조개도 자기가 상처를 받아서 아플 것을 미리 알았다면 진주를 가질 수 있었겠습니까? 우리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도 모르게 오는 고통을 겪으면서 결국 거기에서 열매가 맺어지는 거예요.
입어대해(入於大海)할새 백천만억의 중생이 금은, 유리, 차거, 마노, 산호, 호박, 진주등보를 구하려고 바다에 들어간다고 나옵니다. 입어대해(入於大海)한다 그랬는데, 왜 바다에 들어간다고 얘기를 했을까요? 강을 건넌다고 해도 되고 피안으로 간다고 해도 되는데, 큰 바다에 들어간다고 말했을 때는 분명히 그 이유가 있을 거라 말입니다. 우리 인간이 사는 것은 모든 사람의 마음에 맞게 하기 위해서 사는 겁니다. 여러사람 마음에 맞게 살아야 그게 사는거지, 자기 혼자 살면 맛이 없어요. 그래서 재물을 모으는 것도 그걸 모아서 여러 사람에게 주면 고맙다고 생각을 하고 맛있게 받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여기서 바다를 얘기한 이유는, 바다는 거기에서 나온 소금을 가지고 맛을 내는 것을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에게 모든 맛을 내주는 것을 뜻해서 입어대해(入於大海), 큰 바다에 들어간다고 얘기를 한 것입니다. 아무리 금은, 유리, 산호, 호박, 진주등보를 다 구한다 하더라도 그 맛이 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래서 바다의 소금을 가지고 모든 맛을 내듯이, 우리가 인생 살면서 모든 데 맛을 내야 되기 때문에 큰 바다에 들어간다고 얘기를 했습니다. 우리가 돈을 모은다, 무슨 일을 한다 해서 열심히 노력하는 것도 다 남들한테 맛을 내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쉽게 얘기해서 여러분들이 분 바르고 이쁘게 화장할 때는 남 보기 좋으라고 하는 것이지 나 보기 좋으라고 하는 게 아니잖아요? 마찬가지로 예를 들어 재물을 모은다 하더라도 결국은 남들이 보기 좋아하고 남들에게 맛이 나게끔 살기 위해서 노력하는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입어대해(入於大海), 큰 바다에 들어간다는 것은 바로 그런 얘기입니다. 가사흑풍(假使黑風)이 취기선방(吹其船舫)하야 표타나찰귀국 (飄墮羅刹鬼國)커든. 그런데 “가사흑풍(假使黑風)이 취기선방(吹其船舫)한다” 라고 했습니다. 흑풍(黑風), 검은 바람이 불어온다고 했는데, 왜 하필이면 여기에 검은 바람이라고 그랬을까요? 바람은 빛이 안보이는데, 검은 바람이라고 했다 말입니다. 그리고 그 많은 바람 중에 꼭 검은 바람이라고 얘기한 이유도 있을 것 아닙니까? 우리가 입어대해(入於大海)해서, 바다에 들어가서 맛을 내려고 그 노력을 하는데, 흑풍(黑風)이, 검은 바람이 불어온다고 했다 말입니다. 왜 흑풍(黑風)이 분다고 했나 말입니다 . 이것은 아주 쉬운 얘기예요. 옛날에는 웬만한 동네에 가면 그 동네 앞에 병장수라는 술장수가 하나씩 있었습니다. 막걸리 장수인데, 거기에는 반드시 머리 꼬랑지를 딴 여자를 데려다 놓고 술을 팔아요. 그러면 촌에 건달들이 술을 마시러 옵니다. 검은 머리 꼬랑지 땋고 와서 ‘처녀 기생‘ 이다 그래 가지고, 쌀 한 말 팔아 가지고 가는 사람도 있고, 닭 팔아 가지고 가는 사람, 돼지 팔아 가지고 가는 사람 많이들 있었습니다. 가서 그돈을 다 없애고 오는 거예요. 이게 지금 힌트를 주는 겁니다. 거기를 가면 그 여자는 누가 가든지 극진하게 대접을 해요. 하다못해 남의 집 머슴이 가더라도 대관 대접을 해줍니다. 그러니까 동네 사내들이 거기에 다 빠져 가지고 있는 거 없는 거 다 털어주고 오고 그러는 거예요. 그 돈을 다 털고 나서 외상 술이라도 먹게 되면 그때는 그 여자가 껍데기까지 다 벗깁니다. 돈 가져와서 찾아가라고, 그래도 흑풍(黑風)이 짐작이 안 가요? 흑풍이란, 검은 마음을 먹고 있는 사람이 숨어 들어온다 그런말입니다. 그 여자가 진짜 동네 건달들이 이뻐서 그렇게 잘해준게 아니라 속으로는 검은 마음을 먹고있는 거예요. ‘저 놈한테서 돈 좀 빼앗아야 되겠다'하고 재산을 노려요. 꼭 여자만 그러는 게 아니라, 이 세상에는 누가 돈이 있으면 남자도 거기에 가서 머리 숙이고 “나리 마님“ 하면서 검은 마음을 먹게 됩니다. ‘내가 이렇게 하면 너한테 한 푼 이라도 더 가져올 수 있겠지. 나를 믿고 맡기면 빼앗아야지'하는 게 전부 검은 마음들입니다. 우리가 근검절약해서 열심히 살려고 애를 썼는데, 뜻밖에 검은 마음을 먹은 사람들이 들어와서 모든 재산을 빼앗아가려고 하는 게 바로 흑풍(黑風)이 불어오는 겁니다. 도둑질하듯이 훔쳐가는 거예요. 저는 일 안 하고 놀면서 남의 재산을 노리는 그런 사람을 만나게 될 때를 얘기해서 가사흑풍(假使黑風)이다, 검은 바람이 분다 라고 얘기를 했습니다. 그럴 때 취기선방(吹其船舫)한다. 그 바람이 배를 치고 들어 온다는 겁니다. 배는뭐를 배라고 합니까? 인간은 모든 것을 싣고 삽니다. 그렇기 때문에 배라고 해요. 자식, 아내, 남편, 가족 모든 것을 싣고 이 세상을 살고 있잖아요? 그래서 배에다 상징한 거예요. 가족이 없이 혼자 사는 사람도 자기 몸 하나는 가꿔야 됩니다. 그것이 배입니다. 그런데 취기선방(吹其船舫)한다, 그 사람에게 침입해 들어온다 이런 얘기가 됩니다. 자기가 열심히 살고 있는데, 그런 검은 마음을 먹고 들어오는 사람이 있어서 사기를 쳐서 가져가려고 하는 겁니다. 하나의 사기꾼 같은 것이 들어오는 거예요. 만약 그런 것이 집안에 숨어들기 시작하면 표타나찰귀국(飄墮羅刹鬼國)한다는 것입니다. 나찰이나 귀신의 나라로 끌고 간다고 했는데, 나찰은 뭐고 귀국은 뭡니까? 나찰은 어떤 마음을 가진 것을 나찰이라고 하고, 귀신의 나라는 어떤 마음을 귀신의 나라라고 합니까? 어떤 게 나찰이고 어떤 게 귀국인지, 내가 옛날 얘기를 하나 해줄 테니까 한번 생각해 봐요. 어떤 사람이 평소에 생선을 걸어놓고 쳐다보면서 밥을 먹었어요. 밥 도둑놈이다 해서 생선을 하나 걸어두고 1년을 사는 사람인데, 그 고을 원이 그 영감 재산을 다 뺏어서 골려줘야 되겠다 생각을 했어요. 원체 지독하니까. 그래서 기생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그런데 전국에서 온 기생들이 다 해봐도 그 사람을 홀리지를 못해요. 그때 나이가 많은 기생 하나가 원에게 부탁을 합니다. 강가에다 정자를 지어 달라고 그랬어요. 거기가 고기도 많고 유명한 낚시터인데, 정자를 딱 지어놓고 있는 거예요. 이 영감이 그 강에서 날마다 낚시를 합니다. 하루는 낚시를 하다가 별안간 소나기가 왔는데, 피할 데가 없으니까 할 수 없이 정자 밑으로 들어갔어요. 원래 남의 집 정자도 안 들어가는 사람인데, 비가 많이 오니까 어쩔 수 없어서 거기에 들어가서 앉아 있는 겁니다. 그때 그 기생이 쫓아 나오더니 “아, 이 귀하신 분이 비를 맞아서 어떻게 합니까? 어서 들어 가십시다"하고 끌고 들어갑니다. 비를 맞았으니 좀 씻으시라고 물을 갖다 주면서 얼굴도 씻겨 주고 발도 씻겨줘요. 또 옷을 한 벌 내주는데 보니까 비단 옷이거든요. 생전 못 보던 비단 옷이에요. 그걸 입어보니까 아주 가볍고 날아갈 것 같애요. 그리고 좋은 약주 한 잔에다가 장조림을 해서 딱 대령하는 겁니다. 고기가 먹고 싶어도 생전 고기 맛을 몰랐는데, 이 쇠고기 장조림에다 술 한 잔 먹으니까 세상에 그보다 더 좋은 게 없어요. 그리고 저녁을 해와서 먹어보니까 그 밥과 반찬이 입에 살살 녹아요. 집에서 그런 반찬은 어림도 없었다 말입니다. 이 영감이 너무 좋아서 술 한 잔 먹고 얘기를 하는데, 늙은 기생이 어쩜 그렇게 자기 마음에 탁탁 맞게 얘기를 하는 겁니다. “돈 한 푼도 아껴 써야 됩니다"이래 가면서 자기의 알뜰한 생활을 얘기를 하는데, 영감이 들어보니까 자기보다 더하거든요. “저는 이렇게 살았는데, 제가 옛날부터 영감님을 존경해왔습니다. 그래서 언제가는 꼭 한번 진지를 해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래요. 밥도 먹고 얘기도 하고 여자가 너무 잘해 주니까 그만 영감이 집에 가기가 싫은 거예요. 그리고 집에 가려고 일어나면 조금 더 놀다 가시라고 그러고, 자기 마누라 보다 더 잘해 주는 겁니다. 허리 아프면 주물러 주고, 목 아프면 바로 뉘어주고 너무 잘해요. 그래서 “여기서 살 수 없나?” 하니까 “아, 제가 존경하는 분인데 여기 사시면 저는 좋지요. 제가 모아놓은 돈이 많습니다. 평생 다 쓸 수 있으니 염려 마십시오“ 그러는 겁니다. 그래서 거기서 잘 먹고 지내면서 집에 갈 생각을 안 했습니다. 그러다가 얼마쯤 지났는데, 기생 친구들이 구경을 온다고 해서 세 명이 왔는데,이 영감하고 사는 것을 보더니 입을 삐죽거리고 가는 겁니다. 친구들이 다 가고 나서 그때부터 기생이 앉아서 우는 거예요. 뭐라고 하면서 우느냐면 “빌어먹을 년들, 내가 부자 영감을 데리고 살든, 세간을 안 해놓고 살든 저희가 무슨 상관이야?”이러면서 막 울어요. 영감이 “나는 재산도 많은데, 자기들이 잘살면 얼마나 잘산다고 그러나?” 하는 생각이 나서 기생을 달랩니다. “뭐가 필요하냐?” 물으니까 “필요하면 뭐 합니까?” 그래요. “아니다. 내가 다 해줄 거다“ 그랬더니 여자가 신이 나는 겁니다. 그래 가지고 자개 장롱에다 금은방에다 죽 갖다 들여 놨어요. “이제 그년들 오면 깜짝 놀랄거다.” 그랬는데, 친구들이 두 번째 와서도 또 입을 삐죽거리고 가요. 세 번을 와서 그러고 갔는데, 나중에는 금송아지까지 사다놓고 나니까 이 영감은 아무것도 없이 다 털렸어요. 그때는 내쫓는 겁니다. 괄시를 하기 시작하는데 죽도 안 주는 거예요. 그래, 할 수 없이 집에 돌아가니까 자기 마누라는 몽당치마를 입은 거지가 돼 있더라는 그런 얘기입니다. 그럼 그 사람은 뭐에 붙잡혀서 그랬을까요? 귀국(鬼國)에 들어간 겁니까, 아니면 나찰(羅刹)에 붙잡혀 간 겁니까? 뭐에 당한거냐 말입니다. 결국은 내쫓기잖아요. 그것은 바로 나찰에 당한 겁니다. 마음이 잡힌 거예요. 거기서 마음을 잡아버린 것입니다. 마음을 딱 잡아버리게 되면 꼼짝 못하고 끌려가서 당하는 겁니다. 나찰한테 잡혀간다는 게 그런 뜻입니다. 기생들이나 이런 데, 또 친구들끼리도 나찰에 잡힐 수 있습니다. 친구도 딱 그 약점을 잡아 가지고서 할 때는 당하는 겁니다. 그 다음에 귀국(鬼國)에 들어가는 것은 인간이 어떤 행동에 당하는 것을 얘기할까요? 선(禪)에 들어가서 이렇게 보면, 우리 인간 사는 것이 수평으로 삽니다. 저울 같은 거 보면 양쪽에다 올려놓은 거 있잖아요? 그래서 조금만 더 놓으면 기울어지고 같이 놓으면 바로 되고 그러는데, 그걸 가지고 분량을 달죠? 우리 인간도 그와 같이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울의 한쪽에다 물건을 조금 더 올리게 되면 그쪽으로 기울어집니다. 기울어지면 반대편에 있는 게 쏟아져요. 이쪽에 놓으면 저쪽이 쏟아지고, 우리 인간도 수평으로 살기 때문에 욕심은 금물이라는 것입니다. 그 전에 사업하는 사람들을 보면 달러를 막 꾸어서 가져왔어요. 달러를 들여와서 땅을 산다, 공장을 늘린다 해서 사업을 벌였는데, 달러 값이 배로 올라버렸습니다. 그래서 그 돈을 배로 물어줘야 되니까 회사가 막 무너지고 그랬던 거예요. 그 돈 갖다 쓴 사람들은 많이 망했습니다, 이자가 배가 되는 외채를 썼으니 당할 수 밖에요. 그런 것을 귀신의 나라, 귀국(鬼國) 그래요. 보이지 않는 데 욕심을 내서 속게 마련인데, 그러면 아까 얘기한 저울대가 하나는 올라가고 하나는 쑥 내려갑니다. 그럼 이쪽 것은 결국 쏟아지잖아요. 그런 수평을 못 지키게 하는 것이 바로 귀국(鬼國)입니다. 귀신 나라들입니다. 귀신 나라는 내가 모르고 당해서 망하는 거예요. 나찰(羅刹) 모양으로 마음을 줘서 뺏어가는 게 아니고, 나도 모르게 꼭 될것 같고 이(利)가 남을 것 같아서 했는데 결국은 탁 털어가는 것을 귀국(鬼國)그럽니다. 나찰(羅刹)과 귀국(鬼國) 둘이 달라요. 그럼 여러분들은 과연 수평이 어떠냐는 겁니다. 예를 들어서 달러가 값이 내려갈때 끌어다 쓰면 반드시 부자 될 줄 알고 가져왔는데, 그러나 그 달러 값이 크게 올라가면 그 사람들 다 어떻게 되느냐 말입니다. 부도나고 회사 망하고 난리나잖아요? 표타나찰귀국(飄墮羅刹鬼國)이라는 것은 뜻밖에 그런 일을 당할 수 있다 그런 얘기 입니다.
기중(其中)에 약유내지일인 (若有乃至一人)이라도 칭관세음보살명자 (稱觀世音菩薩 名者)면 시제인등(是諸人等)이 개득해탈-나찰지난(皆得解脫-羅刹之難)하리니 이시인연(以是因緣)으로 명-관세음(名-觀世音)이니라 그런데 “그 중에 약유내지일인 (若有乃至一人)이라도, 만약 한사람이라도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부르게 되면, 그 모든 사람들이 나찰의 난(難)에서 벗어날 수 있다“ 라고 얘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약유내지일인 (若有乃至一人)이라는 그 ‘한 사람’은 누구냐는 겁니다. 그중에 한 사람 이라도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부르면 그 모든 사람들이 다 나찰의 난에서 해탈 될 것이다 그랬는데, 그 한 사람은 누구를 얘기합니까? 두 사람 있으면더 좋을 텐데, 한 사람만 얘기한 이유가 뭐냐는 겁니다. 옛날에 어떤 사람이 가다 보니까 어느 집이 운(運)이 다 됐어요. 그래서 그 집 다락에 매달린 악귀(惡鬼)가 거진 풀어지게 돼 있는 것이 보이는 겁니다. 그래서 ‘아, 이 집은 머지않아 망하겠구나.’ 생각을 했는데, 나중에 또 보니까 전과 다름없이 잘 살고 있더라 말입니다. 왜 그런가 하고 살펴보니까, 그 집에 며느리가 들어왔는데 그 며느리가 힘이 있었던 거예요. 그래서 그 악귀가 다시 묶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의 사람을 들여오는데도 상당히 많은 것을 보거든요. 일인(一人), 한 사람이라는 것은 그와 비슷한 얘기입니다. 이 방원이가 아무리 훌륭했다 하지만 만약에 황희 황정승과 맹보리 맹정승이 없으면 절대 그 나라를 유지하지 못했습니다. 세종대왕도 맥을 못 췄어요. 그 두 사람 때문에 나라가 섰던 거예요. 그런데 맹정승보다 황정승이 더했습니다. 황희 황정승은 앞일을 예견했던 사람입니다. 그 자손들이 “지금은 아버님이 계시니까 죽이라도 그럭저럭 이웃에서 갖다 주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우리 어떻게 삽니까?” 그리고 근심을 했어요. 그러니까,”야 이놈아, 공작새가 낙거미 먹고 살까봐서?” 하고 그 한마디를 했어요. 비유예요. 황희 정승은 나라의 녹을 안 먹었습니다. 갖다 쌓아놓고 그냥 어려운 사람을 주면 주더라도 자기는 일체 입을 안 대고 그러고 산 분이에요. 영감이 죽고 나서, 명나라에서 공작을 보내 가지고 이 나라에 인재가 얼마나 있는지 시험해 봐야 되겠다 그랬어요, 그런데 그 공작새가 아무것도 안 먹는 겁니다.그러니 나라에서 큰일났거든요. 공작새가 죽으면 안 되니까 온 데 그 방도를 알아봐도 아는 사람이 없는 겁니다. 그래서 황정승이 원체 나라를 위하다 갔으니까 혹시 그 자손들이 아는 게 있나해서 그 집에 가서 물어보니까 모른다는 거예요. 그럼 혹시 유언이라도 없었느냐 그러니까, “공작새가 낙거미 먹고 살라고?” 그 한 말씀만 했다고 얘기를 하는 겁니다. 그때 임금이 그만 깜짝 놀라서 공작새에 낙거미를 먹이니까 다시 살아났잖아요. 그래 가지고 그 자손들에게 녹을 줬다는 그런 얘기가 있습니다. 약유내지일인 (若有乃至一人)이면, 한 사람이라도 관세음과 연결이 된 사람이 있으면 그 나라도 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또 집안에 어떤 악귀가 들어오더라도 거기에 한 사람이라도 올 바로 덕 있게 산 사람이 있으면 모든 나찰이나 귀신은 들어갈 수 없다 그런 얘기입니다. 그러나 누구 원망할 필요가 없는 거예요. 남편을 원망하고 부모를 원망하는 것은 다 못된 생각입니다. 자기 자신 하나라도 어떤 사람에게 고마움을 베풀어 줬으면 그런 나찰이 못 들어오고 귀국에 안 들어가서 집안을 지킬 텐데, 자기 자신은 그렇게 못 해놓고 남만 원망하는 것은 옳지 않은 것 아니냐? 원망하는 그 자체가 잘못이라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라도 칭관세음보살(稱觀世音菩薩) 했으면, 즉 누구 한 사람이라도 남들로부터 “참 훌륭하구나!” 하는 소리를 들었으면, 관세음은 반드시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신다는 말입니다. 옛날에 어떤 사람이 극락을 가야 되는데, 관세음의 힘이 아니고서는 극락을 갈 수 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지옥에 딱 떨어졌는데, 보니까 그 사람이 거미 한 마리를 살린 공덕이 있었어요. 그래 그 공덕이 있어서 저 위에서 관세음이 거미줄을 내려 보내는 겁니다. 그래서 그걸 붙잡고 올라가는 거예요. 올라가는데, 밑에 있는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자기네도 지옥에서 힘드니까 서로 올라가겠다고 매달립니다. 발 붙잡는 놈, 손 붙잡는 놈, 너도 나도 막 매달리는데, 가만히 생각하니까 여러 사람이 달라붙으면 거미줄이 끊어지겠거든요. 그래서 혼자 올라가려고 그 사람들을 막 차내고 떨쳐냈습니다. 저 위에서 보니까 ‘저 놈이 고생을 했으면 올라올 때 같이 올라오겠다는 마음을 먹었을 텐데, 남은 죽든 말든 자기 혼자만 올라오려고 하는구나’ 해서 그 거미줄을 끊어서 다시 지옥에서 살게 했다는 그런 얘기가 있습니다. 우리는 남을 도와줄 때만이 관세음과 연결될 수 있고, 그래서 살아가는 동안 모든 어려움 없이 살 수 있습니다. 남에게 뭔가 하나라도 공덕을 했을 때 금은, 유리,차거,마노, 산호, 호박, 진주등보를 가지고 끄덕없이 건너갈 수 있는 거예요. 그렇게만 하면 관세음이 늘 같이 할 텐데, 자기는 그런 노력도 하지 않고 남편을 원망한다. 자식을 원망한다, 또 이웃을 원망한다 하는 그 자체가 잘못이다 그런 얘기입니다. 약부유인(若復有人) 임당피해 (臨當被害)하야 칭관세음보살명자(稱觀世音菩薩名者) 면 피-소집도장(彼-所執刀杖)이 심단단괴(尋-段段壞)하야 이득해탈(而得解脫)하며 그 다음에 “약부유인(若復有人) 임당피해 (臨當被害)한다” 이렇게 나왔습니다. 이걸 새겨보면 “또 어떤 사람이 별안간 피해를 입게 됐다"는 뜻인데, 이 말은 사람이 많이 있는 곳에 가서 피해를 당하는 것을 얘기합니다. 우리가 사람이 많은 데 가면 정신적인 피해나 여러 가지 피해가 와요. 약부유인(若復有人), 만약 사람이 이렇게 많이 있다고 보면, 그 중에는 나한테 손해를 끼치려고 드는 사람이 하나라도 있지, 없을 리가 없다 그런 얘기입니다. 아무도 없고 혼자 있으면 그럴 리가 없는데 이 세상에는 많은 사람이 살고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사람 사는 곳에 가게 되면 반드시 임당피해 (臨當被害)가 돼요. 피해를 입게 돼 있다 말입니다. 그래서 짐승은 나면 깃이 빠지고, 사람은 가는 데마다 손해가 나게 마련이에요. 어떤 사람이 상사람인데, 자기 부인이 너무 이뻤어요. 그러니까 양반님네들이 맨날 이 부인을 노리고 보는 겁니다. 옛날에 상놈은 도리가 없잖아요? 여기 물 떠 와라 하고 손 쓱 만지고 그러는데, 이 사람이 그 꼴이 보기가 싫어요. 그래서 안 되겠다해서 자기 마누라를 데리고 만주로 도망을 갔습니다. 만주로 가니까 거기는 또 여자 없이 사는 사람들이 많아요. 자꾸 얼씬대는 겁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다시 또 나와서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서 화전을 해먹고 살았답니다. 이쁜 여자 만난 덕에 평생 사람도 못 만나고 숨다시피 하면서 살다가 죽었다는 그런 얘기가 있어요. 임당피해 (臨當被害)는 그런 거나 마찬가지 얘기입니다. 사람들 있는 데 가서 어떤 피해를 입게 될 때 칭관세음보살명자(稱觀世音菩薩名者)면, 즉 “저 사람은 많은 사람을 돕고 살리고 온 사람 이다“ 하는 소리가 들리게 되면, 누가 칼로 찌르려고 왔다가도 그 생각이 없어지게 되고, 또 막대기로 때리고 싶은 생각도 없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아, 그런 분이구나‘ 해서 자연 존경심이 나게 돼요. 관세음이 그 사람들 마음에 존경심을 넣어줘서 그만 그 마음이 다 흩어지게 된다는 얘기 입니다. 우리가 만약 사람이 있는 데를 가게 되면 반드시 임당피해 (臨當被害)가 돼서 피해를 당하기 쉬운데, 뭘로 당합니까? 칼과 작은 대기로 당하기 쉽다 그랬습니다. 그러나 그럴 때도 칭관세음보살명자(稱觀世音菩薩名者)가 되면 피-소집도장(彼所執刀杖)이 심단단괴(尋-段段壞)한다고 했죠? 나를 해치려고 들었던 그 칼과 작대기가 조각조각 다 부서진다는 말인데, 그래서 예를 들어 도적놈 소굴 같은 데 가서 피해를 입게 되었다 하더라도 그 사람들이 ‘아, 저분은 훌륭한 분인데 내가 잘못했다‘ 하는 생각을 하고 오히려 우리를 도와주게 된다는 것입니다
약-삼천대천국토(若-三千大天國土)에 만중야차나찰(滿中也叉羅刹)이 욕래뇌인 (欲來惱人)이라도 문기칭-관세음보살명자(聞其稱-觀世音菩薩名者)면 시제악귀-상불 능이악안(是諸惡鬼-尙不能以惡眼)으로 시지(視之)은 황부가해(況復加害)야따녀 “만일 삼천대천세계에 가득한 야차와 나찰들이 와서 사람들 괴롭히려고 하다가도 그 사람이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일컫는 소리를 들으면 이 악귀들이 흉악한 눈으로 보지도 못하겠거든 하물며 해할 수가 있으랴“ 이런 얘기가 나왔는데, 여러분들이 경(經)을 볼 때 이런 내용을 잘 생각하면서 보시기 바랍니다. 삼천대천국토(若-三千大天國土)란 하늘도 내 마음대로 안되고, 인간도 내 마음대로 안 되고, 땅도 내 마음대로 안 되는 것을 말합니다. 내 마음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우리 인간이 그 속에서 헤매면서 노력하면서 살게 돼 있는 모습을 삼천대천국토라고 얘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또 이세상은 전부 만중야차나찰(滿中也叉羅刹)로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우주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그 힘이 무한히 셉니다. 우리가 샘물을 한 그릇 받아 먹을 때는 달고 좋았지만, 큰 물이 흐르는 데 들어가면 그 물의 위력을 감당할 수가 없죠? 마찬가지로 이 세상의 힘도 우리 마음대로 되지 않는 그런 것이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마음먹은 대로 일이 될 줄 알고 막 나가서 사업을 하고 마음대로 했다가는 백발백중 당합니다. 돈이 있으면 있는 대로 다 털리기도 합니다. 모든 일을 내 힘에 맞게 하면 잘되는데, 나도 모르게 실수해 가지고 그런 어려움을 만나게 되거든요. 바로 그럴 때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불러라 하고 여기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이 세상을 보면 전부 다 올무와 같은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피해 가면서 우리가 사는 거예요. 내가 한 번은 스승님하고 어디를 가다가 이 발목에 올무가 탁 걸렸는데, 그 나무가 벌떡 일어서는 바람에 거꾸로 매달려 있었잖아요. 그러니까 참 죽겠더라 말입니다. 그때 웬만하면 스승님이 빨리 좀 와서 그걸 풀어주면 좋겠는데, 그냥 보시고 껄껄껄 웃고 계세요. 그렇게 한참 있어도 안풀어주시는 겁니다. 그런데 그때 내가 ‘아 , 이 세상은 전부 올무로 되어 있구나! 삼천대천국토로 되어 있구나! 내가 그것을 몰랐구나!’하고 깨달으니까 그제서야 스승님이 “내려와라“ 하시면서 풀어주셨어요. 그렇게도 가르치셨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은 사람이 직접 당해 보지 않고는 알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지금 이 구절을 보니까 그때 생각이 납니다. 삼천대천국토(三千大天國土)에 만중야차나찰(滿中也叉羅刹)이 욕래뇌인(欲來惱人)한다 그렇게 얘기가 나왔습니다. 사람 머리를 괴롭게 만든다는 것인데, 바로 그럴 때는 문기칭-관세음보살명자 (聞其稱-觀世音菩薩名者)하라는 말씀입니다. 즉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듣고 일컬어라 하는 뜻인데, 그러면 우리가 듣는다는 것은 뭐고, 일컫는다는 것은 또 무슨 말입니까? 관세음은 아무 말도 없으신데, 우리가 뭘 어떻게 듣느냐 말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웃는 소리가 전부 다 다르죠? 어떤 사람은 껄껄거리고 웃고,깔깔대고 웃는 사람도 있고 소리가 다 다릅니다. 조금 특이한 사람은 목소리나 웃음소리부터 다르게 나옵니다. 그래서 웃음소리만 들어봐도 그 사람의 오장육부 생긴 것까지 다 알 수 있고 ‘이 사람이 사귈 사람인가, 아닌가?’ 금방 알 수 있는 거예요. 여자들이 웃는 걸 보면 더 합니다. 깔깔깔 웃어대면 아주 간사한 것이 막 쏟아져나와서 그냥 홀랑홀랑 움직입니다. 여자들이라고 다 그런 게 아니고 점잖게 웃는 사람들도 있고 그렇지만, 아주 그 간사하게 웃는 것을 보면 속으로 ‘야, 너 큰일났구나. 어떻게 살래?’ 이런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그런 것을 들을 줄 알아야 돼요. 뭐 하나라도 그냥 보지 말고, 사람이 웃는 소리를 듣더라도 헛되이 듣지 말고, 말하는 소리를 들어도 헛되이 듣지 말라는 겁니다. 그 말하는 소리를 들어서 기억에 남겨놓으면 언제든지 사람을 볼 때 도움이 됩니다. 그냥 후딱후딱 지나가지 말고 잘 들어둬라 그런 얘기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여러 사람을 상대하면서 죽 볼 때, 그 사람이 말은 어떻게 하고 웃음은 어떻게 웃는다 이런 것을 잘 알아서 여러 사람들하고 비교를 해보면 ‘아, 이 사람은 어떻게 살겠구나‘ 알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들 서로 만나서 얘기하고 웃고 지내는 것을 죽 경험해 봐요. 그럼 나이가 한 칠십이나 팔십쯤 되면 스스로 다 알게 됩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 보면 문기칭-관세음보살명자(聞其稱-觀世音菩薩名者)면 시제악귀-상불능이악안(是諸惡鬼-尙不能以惡眼)으로 시지(視之)은 황부가해(況復加害)야따녀” 했습니다. 이말은 “우리가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듣고 일컬으면 이 모든 악귀들이 흉악한 눈으로 보지도 못하고 해할 수도 없다.” 이런 뜻입니다. 여기서 시제악귀(是諸惡鬼)라는 것은, 사람들이 말을 하는데 선(善)은 하나도 없고 악(惡)한 말을 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귀신 같은 말들을 지금 하고 있다 그런 얘기예요. 지금은 전부 자기만 위해서 살기 때문에 남한테 말할 때는 좋지 못한 말을 하죠? 어떤 사람들을 보면 남한테 못이 박히는 악한 말을 많이 하는데, “이 모든 악귀들이 흉악한 눈으로 보지도 못하고 해할 수도 없다“ 라는 말은, 그 사람들이 더 이상 그런 악한 말을 할 수 없게 해준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래서 나로 인해서 상대가 업보를 짓지 않게 되는 것을 얘기하는 거예요. 이게 관세음보살의 원리입니다. 여기 말씀이 모든 악귀가 악한 눈으로 보지 못할 거다 이랬으니까 여러분들은 이걸 진짜 귀신이 못 보게 되는 거다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게 아니라 “네가 상대방으로 하여금 악한 말을 하거나 못된 눈으로 보지 못하게 할 것이다“ 그런 말입니다. 그래서 “네가 그 상대의 마음을 고치게 해주었으니 관세음이 항상너를 보호해줄 것이다"하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하든지 남이 잘못하지 않도록 도와주는 모습으로 살 때, 그 공덕으로 관세음이 늘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뜻입니다. 설부유인(設復有人)이 약유죄(若有罪)커나 약무죄(若無罪)히 축계가쇄(丑械伽鎖)하야 검계기신(檢繫其身)이라도 칭-관세음보살명자(稱-觀世音菩薩名者)면 개실단괴 (皆悉斷壞)하고 즉득해탈(即得解脫)하나니라 이 세상에 와서 살 때 어떤 사람은 죄가 있기도 하고 또는 죄가 없기도 하고 그런데, 만약 몸에다가 쇠사슬을 감기고 잡혀 들어가게 됐다 하더라도 그때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부르면 바로 모든 것이 흩어지면서 죄가 다 무너지게 될 것이다, 하고 말씀을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무엇을 죄라고 하느냐 이게 가장 중요한 문제입니다. 남한테 욕을 하고 때리고 하는 것도 물론 죄가 되겠지만, 여기서는 그런 것을 뜻하는 게 아닙니다. 유죄(有罪), 무죄(無罪) 그랬는데, 유죄(有罪)란 어떤 것을 말합니까? 바로 자기가 맡은 바 임무를 행하지 않을 때 그것이 유죄(有罪)입니다. 죄가 있는 것이다 그런얘기예요. 자기가 이세상에 와서 사지가 성할 때는 다른 사람들하고 같이 열심히 일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남이 밭을 매고 있으면 같이 밭도 매주고, 또 남이 공부할 때 가면 공부 같이하고, 기도도 같이 하고해서 자기 육신을 놀리지 않을 때 죄를 안 짓는 것입니다. 열심히 일할 때 죄를 안 지어요. 그런데 자기 맡은 바 일은 하지 않고 빈둥빈둥 놀고 낮잠만 자고, 밤 늦도록 돌아다니다가 낮에는 실컷 자고, 또 밥 먹고 나가고 이래 봐요. 누가 그 사람을 좋아하겠습니까? “어휴, 저놈의 자식 언제나 사람 되나!” 이러지 진정한 말을 해주질 않아요. 말을 해줘 봐야 그 사람 귀에 들어가지 않으니까 그 사람은 늘 그렇게 하고 사는 겁니다. 이 세상에 와서 일도 하지 않고 게으름을 피웠으면 그것은 반드시 유죄(有罪)가됩니다. 그런 사람들은 “내가 부모가 주는 밥 먹고, 부모가 주는 돈 가지고 놀았는 데 뭐가 잘못이야?” 한다든지 또는 “내가 그 만큼 노력해서 벌어서 충분히 먹고 살게 됐는데, 노는 게 무슨 죄가 있어?” 그럽니다. 그러나 열심히 일하지 않고 놀고 먹은 그것이 바로 죄라는 겁니다. 죄가 있다 말입니다. 우리가 돈 좀 있고 넉넉하다고 해서 맨날 술 마시고 기생집에나 다녀봐요. 나중에는 몸에 병이 오든지 해서 무척 고생을 하게 됩니다. 재산이 많이 있어도 그것을 어려운 사람에게 나누어주고 협조해 가면서 자기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은 항상 건강을 잘 유지해 나가요. 그러나 일도 안 하고 맨날 집에서 빈둥거리다가, 병 낫게 한다고 산에 운동이나 다니고 이렇게 하는 사람은 그게 힘든 거예요. 그러지 말고 이웃 사람들 힘들 때 도와주고 협조해 줘라 말입니다. 그 병 바로 낫습니다. 그게 죄를 속해주기 때문에 낫는 거예요. 어떤 분들 몸에 병이 오면 다른 할 일은 없고 하니까 산에 운동하러 다니죠? 운동을 해서 그 병이 다 나을 것 같으면 이 세상에 생로병사(生老病死)가 없어요. 사람은 어쨌든 자기 노력을 아끼지 않고 열심히 노력을 해야 됩니다. 이런 데 와서도 길가에 거슬리는 돌 하나라도 치우고 하는 사람들은 바로 사는 사람들이에요. 그러나 와서 손 비비고 놀고 빈둥거리는 사람들은 대개 그 집안도 편치가 못합니다. 우리가 열심히 몸을 움직이고 노력하는 것, 그것이 바로 죄를 벗는 길입니다. 자기 육신의 손발이 튼튼하면 쉬지 말고 모든 일을 노력할 때 병도 낫고 그런 거예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병도 낫기가 어렵습니다. 어떤 때 천보기나 만보기 달고 다니는 사람들 보면 나는 속으로 ‘미친 놈!’ 그럽니다. ‘이놈아, 천보기 달고 다니려면 남의 집에 가서 밭을 매주든지 마당을 쓸어주든지 일을 해봐라. 그러면 천보 만보 걸을 텐데, 뭐하러 그걸 달고 다니냐?’ 그래요. 그렇게 하면 유죄(有罪)가 되는데, 어떻게 병이 쉽게 나을 수 있겠나 말입니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 하는 일도 잘 안 풀립니다. 그래서 유죄(有罪)다 그러면, 남한테 뭐를 잘못했다 이런 말이 아니라 내가 부처님 뜻을 거역한 것이 바로 죄라는 것입니다. 부처님이 우리 인생을 보낼 때는 여기 와서 서로 돕고 열심히 일하면서 살라고 하신 건데, 남은 돕지 않고 저만혼자 살려고 해서 죄를 졌으니까 유죄(有罪)다 이 말입니다. 그 다음에 무죄(無罪)는 죄가 없다는 건데, 죄가 없다면 왜 쇠사슬을 차겠습니까? 이 무죄(無罪) 라는 것이 바로 전생에서 지은 업보를 얘기합니다. 어떤 사람은 여기와서 참 착하게 살고 있는데, 하는 일마다 안 풀리고 고생을 많이 해요. 그것은 전생의 잘못이 이생에 내려와서 그런 것입니다. 윗물이 아래로 흘러내려오듯이, 우리가 전생에 죄를 졌으면 그냥 그것으로 끝나는게 아닙니다. 그 죄를 갚아야만이 다시 부처님 앞에 갈 수가 있어요. 그래서 이생에 열심히 노력하고 살아도 뭔가 잘 풀리지 않고 고생을 많이 한다면 전생의 업보가 있어서 그런 것입니다. 자기가 전생에 게으르게 했거나 남한테 도움을 주지 못했으면 그게 죄가 돼서 이생이 와서 고통을 당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전생에 일을 안 하고 놀았기 때문에 여기서는 몇 배의 일을 해야 됩니다. 그러나 일을 해도 큰 효과가 나질 않아요.전생에 늘 공짜로 얻어먹었기 때문에 여기서 일을 그렇게 많이 해도 능률이 안 나올 수밖에요. 약유죄(若有罪),약무죄(若無罪)는 그렇게 이생의 죄와 전생의 죄를 얘기한 것인데, 여기 또 보면 축계가쇄(丑械伽鎖) 하야 검계기신(檢繫其身)한다는 말이 나옵니다. 수갑과 고랑과 칼과 사슬이 그 몸을 속박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우리한테 그런 죄가 있게 되면 아무리 돈을 많이 벌고 좋은 집에 호의호식을 한다고 하더라도 온 몸에 쇠사슬을 감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 신세라는 얘기 입니다. 예를 들어서 수전노가 되어 가지고 그 많은 돈을 어디 쓸 곳에 제대로 못 쓰고, 또 도둑이 들까봐 무서워서 개 놓고 지키느라고 애쓰고, 자기 마음대로 아무것도 못하는 거예요. 이런 문제를 축계가쇄(丑械伽鎖) 라고 했습니다. 그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바로 칭-관세음보살명자(稱-觀世音菩薩名者)하라고 했습니다.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불러봐라 그랬는데, 그럼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뭘 어떻게 하는 것을 말합니까? 관세음보살의 이름이란 것은, 우리가 “관세음보살“하는 이름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관(觀)의 이름, 관(觀)의 소리, 즉 이 우주의 소리를 들어라 하는 말입니다. 관(觀)이 뭡니까? 보이지 않는 우주의 그 모습을 보는 것이 관(觀)이죠? 그래서 관(觀)이 라는 것은, 우주의 이치에 순종하라는 뜻입니다. 뭘 어떻게 하는 것이 우주에 순종하는 모습이냐면, 무엇보다도 어른의 말에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그게 관(觀)이예요. 세상 어느 누구도 자식을 가르칠 때 잘못되라고 가르치는 법은 없어요. 그러니 어른 말에 순종해라 말입니다. 또한 부처님께 순종해라 그런 뜻입니다. 부처님 말씀 구절구절마다 나쁜 짓 하라는 것 없고, 다만 열심히 일하고 노력하라고 그러셨잖아요? 그래서 부처님 말씀에 순종하면 그것이 바로 우주에 순종하는 모습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세(世)하면, 우리 육신을 돌아보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육신을 가지고 올바를 일을 했으면 몸에 건강이 올것이고 또 남들에게 대접을 받지만, 올바로 하지 않을 때는 겉으로만 대할 뿐입니다. 세도 있는 사람한테 가서 아부할 때, 자기의 속은 내놓지 않고 그 사람 마음에만 맞게 얘기해서 그 신용을 따려고 하거든요. 사람이 말을 너무 아프게 하거나 강퍅하고 그러면, 다른 사람들이 거기에 안 다치려고 아부를 하고 비위를 맟추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이 사람은 출세하기가 어렵습니다. 또 집안에도 불길한 일들이 일어나게 돼요. 그 사람 고생하는 모습이 너무 불쌍해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의지가 되어주고 그러면 그 사람은 분명히 세(世)가 된 것이지만, 사람들이 말로는 “아이, 참 안됐어“ 그러면서도 마음에 아무 동정이 안 간다면, 그 사람은 뭔가는 세(世)에서 잘못했다는 겁니다. 자기 몸을 잘못 돌봤다는 얘기예요. 발자국 하나라도 바로 떼어놓고, 남들이 시비하지 않도록 그렇게 행동할 수 있을 때 그 사람은 바로 세(世)에 해당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늘 부처님을 믿고 수행을 한다 하면서도 상(相)이 있어 가지고 이 관(觀)과 세(世)와는 무관하게 행을 한다 말입니다. 그런 건 생각하지 않고 자기고집대로만 나가니까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고 도(道)도 깰 수 없는 거예요. 그 관(觀)과 세(世)가 익어야 됩니다. 어른의 말을 존경하고 잘 모시고 진정으로 마음이 움직이면 자기 몸도 스스로 움직이게 돼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분들은 가상적인 모습을 꾸밀려고 합니다. 보살님들도 비싼 화장품 바르지 말고 그 돈 좀 떼서 가난한 노인네 고기 한 근 사다 줘봐라 말입니다. 그 사람이 얼마나 고맙다고 하겠어요? 비싼 화장품 바르고 잔뜩 꾸미고 나가면 사람들이 볼 때 말로는 예쁘다고 할지 모르지만 속으로는 ‘저런 미친 년! 서방 고생하는 줄도 모르고‘ 이럴 겁니다. 그런것은 세(世)에 해당되지 않는 모습이다 말입니다. 자기는 허름한 옷을 입더라도 이웃의 불쌍한 노인네한테 옷 한 벌 사다 주고, 춥게 살고 있는 노인네한테 죽이라도한 그릇 쑤어다 주고 이렇게 해봐요. 그럼 분명히 세(世)가 됩니다. 그럴 때 자기의 모든 문제가 다 해탈이 되는 것이지, 아무런 행(行)도 없이 그냥 입으로만 관세음보살 불러서 해탈이 될 것 같으면 누가 안 불렀겠습니까? 그게 아니다 말입니다. 그 다음에 음(音)이라는 것은 뭡니까? 내가 말을 해서 상대방에게 어떤 장애가 나갔는지 한번 생각을 해보라는 것입니다. 똑같은 말도 성질이 날 때 하는 말하고 기쁠때 하는 말이 다릅니다.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상대방이 들을 때 혹시 역겹게 들리지 않을까?”이러고서 말 한마디 해봐요. 그러면 상대방이 들을 때 같은 말인데도 괜히 동정이 갑니다. 여러분들이 전생 업보와 이생 업보를 소멸하고자 한다면, 그렇게 관(觀)과 세(世)와 음(音)으로서 남을 도와줄 때라야 비로소 되는 것입니다. 보살(菩薩)은 도와주는 것이죠? 그렇게 할 때 그 이름이 여러 사람한테 나면서 자기의 모든 고통이 무너지게 되는 거예요. 오늘부터라도 당장 그렇게 해봐요. 내가 밥 한 그릇 먹던 것을 반 그릇 먹더라도 이웃을 먼저 도와주고 이러면서 살아가다 보면 반드시 관세음을 이루어집니다. 틀림없어요. 그런 행(行)이 없이는 천만 번 관세음을 부르고 천금 만금을 부처님한테 갖다 내놔도 안 풀립니다. 돈만 갖다 내려고 하지말고 ‘어떻게 하면 남과 더불어 서로 협조하면서 살 수 있을까?’ 하고 그 길을 모색하고 나갈 때만이 개실단괴(皆悉斷壞)하고 즉득해탈(即得解脫)하게 되는 것입니다.
약-삼천대천국토(若-三千大千國土)에 만중원적(滿中怨賊)커든 “약-삼천대천국토(若-三千大千國土)에 만중원적(滿中怨賊)커든”하는 말이 여기 나오는데 “만일 삼천대천세계에 도적이 가득 찼거든"하는 얘기입니다. 삼천대천(三千大千)이다 그러면, 우주에도 세 가지가 막혀 있고, 우리 인간에게도 세 가지가 막혀 있다는 것입니다. 하늘도 막혀서 보이지 않고, 공간도 막혀서 보이지 않고, 또 땅도 막혀서 보이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인간도 첫째는 나 자신이 막혀서 내 속을 남이 보지 못하고, 두번째는 내 속이 막혀 있기 때문에 남의 속도 들여다볼 수가 없고, 세 번째는 모든 측근자들의 속을 알 수가 없는 그런 문제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만 내가 좋아하는 것만 알지 남이 좋아하는 것은 모른다 하는 것이 국토(國土)예요. 그런데 왜 삼천대천국토 (三千大千國土)에 만중원적(滿中怨賊)이 됐느냐 이게 문제입니다. 왜 항상 우리 마음 가운데에 적(賊)을 가지고 살게 되느냐 말입니다. 우리 마음에는 적 아닌게 없어요. 전체가 다 적(賊)입니다. 형제든 이웃이든, 전체 속을 알 수 없기 때문에 조심하고 늘 살피고, 서로 믿지 못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이 세상 창조가 어떻게 돼 있기에 그런 것 일까요? 사람들이 누구나 다 자기 마음속에 적이 없는 사람이 없어요. 괜히 상대가 밉고, 또 자기 눈에 옳지 않게 보이고, 마음 속에 여러 가지 적을 삼고 있다 말입니다. 누구나 다 그렇게 만중원적(滿中怨賊)으로 살고 있는데, 무엇 때문에 그런게 생기느냐는 것입니다. 이 앞에 구절을 보면 약유죄(若有罪), 약무죄(若無罪)가 돼 가지고 축계가쇄(丑械伽鎖)로 고통 당하는 얘기가 나와요. 축계가쇄(丑械伽鎖)하야 검계기신(檢繫其身) 이라도” 하고 말씀을 했는데, 이 말은 “수갑과 고랑과 칼과 사슬이 그 몸을 속박하여도“ 이렇게 풀이가 되어 있습니다. 이 축계(丑械)라는 말은 무엇을 뜻하느냐면, 사람은 누구나 자기 마음을 어디 털어 놓지 못하고 자기 스스로가 계율을 가지고 그 속에 묶여 사는 것을 얘기합니다. ‘혹시 내가 몸 하나라도 잘못 움직이면 남들이 흉을 보지 않을까? 웃음거리가 되지 않나?’ 이러면서 늘 자기 행동이라든가 말을 조심하고 사는 모습을 축계(丑械) 그래요. 그리고 또 가쇄(伽鎖)는 캄캄한 것을 얘기해요. 인간이 자기 속이 남에게 보이지 않게끔 자물쇠를 채워놓고 사는 모습을 가쇄(伽鎖)라고 합니다. 누구나 다 자기 자신한테 자물쇠를 채우고 다닌다 그런 말입니다. 말도 함부로 하면 안 되니까 입에다가도 자물쇠를 채웠다가 필요할 때 열어서 말을 하고 그러는데, 축계가쇄(丑械伽鎖)하면 그런 모습들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 입을 다물고 말을 못하니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누가 붙잡아 맨 것도 아닌데, 자기 스스로가 우주에 붙잡혀 매여서 구속돼 있는 모습을 “축계가쇄(丑械伽鎖)하야 검계기신(檢繫其身) 한다 ”라고 말씀을 해놨습니다. 인간 자체가 축계가쇄 속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것인데, 바로 그럴 때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부르면 거기에서 벗어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여기 약삼천대천국토(若三千大千國土)의 만중원적(滿中怨賊)은 어떻기 때문에 만중원적이 돼 있느냐 것입니다. 관세음품(館世音品)의 어느 구절로 인해서 만중원적이 있게 된 것인가 이게 문제인데, 이런 것을 알 때 세상을 알게 되는 거예요 우리 인간이 만중원적으로 살게 되는 이유는, 바로 우리 자신이 무진의보살(無盡意菩薩)이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해보려고 해도 내 마음대로 안 되는 것, 이게 무진의(無盡意)입니다. 세상이 내 뜻대로 안 되고 뜻을 다할 수가 없기때문에, 상대방도 내 마음에 들지 않게 돼 있고 모든 것이 다 내 마음에 들지가 않는 거예요. 무진의 자리와 만중원적 자리가 연결이 돼 있습니다. 뭐든지 내 마음대로 안 되기 때문에 적이 생기는 것이지 그렇지 않으면 적이 생길이유가 없어요. 무진의가 아니라면, 다 내 마음대로 된다면 왜 적이 생기겠습니까? 두 내외 사는데도 아무리 서로 다정하고 해도 자기 마음에 안 들 때가 더 많습니다. 여러분들이 혹시 집에서 남편하고 싸우고 여기 왔다면 이런 말씀을 듣고 ‘아, 그렇게 되는 원리가 있구나. 내가 잘못했구나'하고 참회가 되실 겁니다. 이 세상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내 마음에 스스로 적이 생기게 돼 있지,누가 적을 넣어준 것은 아니라 말입니다. 내 마음에서 그것을 조절하지 못해서 스스스로 생긴 거예요. 우리가 원만했더라면 그럴 리가 없어요. 그러나 혹시 우리 마음에 그런 적이 생겼더라도 여기 경에 나온 말씀처럼 관세음보살을 부르면 적이 없어지는데, 우리가 관세음보살을 부를 생각을 하지 않는다 말입니다. 바로 그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나무관세음보살(南無觀世音菩薩)하면 칭기명고(稱其名故)로 즉득해탈(即得解脱)하나니라 절에서 “나무관세음보살"많이 하죠? 여기도 보면 “나무관세음보살 (南無觀世音菩薩) 하면 칭기명고(稱其名故)로 즉득해탈(即得解脱)하나니라” 하고 나와 있습니다. 나무관세음보살”을 부르게 되면 그 이름을 일컬은 연고로 곧 벗어나게 된다 그런 얘기인데, 그러면 나무(南無)는 뭐를 뜻해서 나무(南無)라고 하고, 그게 뭔데 “나무관세음보살”을 부르면 해탈이 된다고 했나, 이런 점들이 궁금하실 겁니다. 여러분들 어떤 때 보면 “나무관세음보살!”하고 부르고 한탄하지요? 그 내용을 몰라도 그냥 부르는데, 우리가 “나무관세음보살!”하게 되면 자연 그 힘하고 나하고 연결이 되는 원리가 있기 때문에 부르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진의(無盡意)가 돼서 아무것도 모르잖아요? 그래서 그 힘을 움직이게 끔 만들기 위해서 관세음보살이 필요한 것이지, 만약 그런 힘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관세음보살 기도도 필요 없고 또 관세음보살을 불러도 소용없을 겁니다. 그런데 우리가 “관세음보살"하고 부르면 그 힘은 자동적으로 움직이게 끔 돼있습니다. 마치 전등불 스위치를 울리면 바로 불이 들어오는 것과 같아요. 그래서 우리가 힘들고 어려울 때 , 또는 억울한 일을 당할 때 “나무관세음보살!”하고 부르면 자동으로 그 힘이 움직여집니다. 그러니까 이 경(經)을 읽는 것이고 또 “나무관세음보살!” 하고 부르는 것이지, 만약에 나처럼 전부 알고 풀이를 해서 한다면 누가 그것을 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들은 다만 그 내용이 이렇게 돼 있다 하고 알면 되는 겁니다. 우리가 “나무관세음보살"하면 곧 해탈을 얻게 된다고 한 이유는, 이 우주에 바로 그런 장치가 돼 있기 때문에 그런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이 세상은 전부가 소리로 되어 있고, 그 소리의 곡조에 의해서 그 문(門)이 열리고 변화가 오게 돼있습니다. 이것을 이용한 자리가 바로 “나무관세음보살"입니다. “나무석가모니불"해도 음이 다 틀리잖아요? “나무관세음보살”하면, 나 ·무 ·관 ·세 ·음 · 보· 살 할 때 그 말에 의해서, 그 소리에 의해서 우주의 힘이 움직이게끔 장치가 되어 있는 자리가 열립니다. 그 장치를 여는 하나의 기계와 같은 모습인 것입니다. 우리가 “나무관세음보살"을 부르고 염원할 때 그것이 저절로 열리면서 그 힘이 우리한테 오게 되는 그런 원리입니다. “나무관세음보살“을 부를 때, 나 ·무 ·관 ·세 ·음 · 보· 살 하면 전부 일곱 자(字)라 말입니다. 그러면 그 소리에 의해서 우주의 칠보(七寶)의 힘이 우리한테 와서 도와주게 돼 있어요. 그것이 바로 우리가 “나무관세음보살"을 부르는 이유입니다. 그리고 “관세음보살"그러면 오방(五方)의 힘을 움직이게 하는 모습이 됩니다. 그런데 그것을 부를 때 괜히 욕심을 내 가지고 “나 돈 좀 벌게 해주십시오, 나무관세음보살!” 이러면 그건 안 됩니다. 또는 남이 미워서 “저 사람을 죽게해 주십시오, 나무관세음보살!” 그것도 안 통합니다. 그렇게 되면 벌써 악(惡)이범했기 때문애 그 열쇠로 열리질 않는 거예요. 똑같은 "나무관세음보살”이지만, 그저 감사한 마음에서 “나무관세음보살!”부르고, 또는 너무 급한 일이거나 아니면 도적들이 모여들어서 꼼짝할 수 없을 때 “나무관세음보살!” 하면, 그 소리에 의해서 열리게 돼 있습니다. 그런데 꼭 우리말로 “나무관세음보살!”하지 않고 예를 들어서 미국 사람이 그 나라 말로 “나무관세음보살!”하고 불러도 열리고, 경상도 사투리로 발음을 해도 마찬가지로 열립니다. 그렇게 소리로 해서 세상이 됐거든요. 예를 들어서 십호(十號)를 발음하는데도 경상도 사람들은 “명행족"이라고 못하고 “맹행족"하고 읽죠? 그렇게 발음해도 똑같이 풀린다 말입니다. 이런 것들이 전부 그 지방의 그 빛에 의해서 소리로 장엄이 돼 있기 때문에 다 풀리는 것입니다.
약유중생(若有衆生)이 공경예배-관세음보살(恭敬禮拜-觀世音菩薩)하면 복불당연 (福不唐捐)하나니 “약유중생(若有衆生)이 공경예배-관세음보살(恭敬禮拜-觀世音菩薩)하면 복불당연 (福不唐捐)하나니"하는 구절이 있습니다. “만일 모든 중생들이 관세음보살님께 공경하고 예배하면 복이 헛되지 않으리니“ 그랬는데, 여기 모든 중생들이란 무진의(無盡意)를 얘기하는 것이죠? 그리고 관세음보살에게 공경하고 예배를 하라 이렇게 말을 했다 말입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말하는 공경(恭敬)은 어떤 것이고 예배(禮拜)는 어떤 것일까요? 예배라고 하면,우리가 관세음보살에게 빌어야 된다는 뜻일까요? 관세음보살을 공경예배하라고 한 말씀이 진짜 관세음보살을 공경하고 예배하라는 뜻이냐, 아니면 다른 의미가 또 들어 있느냐, 이게 문제거든요. 관세음은 만인이 부르고 찾는 자리이고, 그래서 어머니나 다름없는 자리인데 뭘 더 공경 받고 예배 받기를 바라겠습니까? 그 속에는 뭔가 다른 뜻이 있지 않겠어요? 경(經)에는 이런 곳이 함정인데, 자칫 그 뜻을 잘못 생각할 수 가 있는 거예요. 만약 중생들이 관세음보살에게 공경예배하면 당연히 복을 받을 수 있다고 했는데, 그러면 과연 어떻게 하는 것이 관세음에게 공양하는 것이고 또 예배하는 것인지, 그 말씀의 진짜 뜻이 무엇인지 이것을 한번 잘 생각해 보고 넘어갑시다. 관세음 그러면, 관(觀)이라는 것은 보이지 않는 세상을 말하는 것이죠? 그런데 저 우주 세상도 물론 안 보이지만, 우리 모든 중생의 마음도 전혀 안 보인다는 것입니다. 여기 앉아 있는 여러분들도 서로의 속이 안 보입니다. 저 사람은 어떤 기술을 가지고 있는지, 또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합니다. 모든 사람들의 마음이 바로 관(觀)과 같은 보이지 않는 모습으로 있습니다. 그래서 공경예배-관세음보살(恭敬禮拜-觀世音菩薩) 그려면, 상대방의 속이 전혀 보이지 않으니 다만 공경만 하라는 것입니다. 싸우고 욕하고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보이지 않는 관(觀)의 세상을 공경하듯, 모든 사람들의 보이지 않는 마음에도 공경만 하면 된다 그런 얘기예요. 지금 여기에 이 많은 분들이 있어도 내가 그 속을 다 알 도리가 없습니다.여러분 마음속을 모른다 말입니다. 그래서 공경할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우선 첫째 관(觀)에서는, 남의 속이 보이지 않으니 다만 공경하라는 것입니다. 그 관(觀)에는 움직이는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다른 사람의 속을 모르기 때문에 그저 공경하면서 “네, 알겠습니다"하고 순종하고 나가면 복은 반드시 오게 돼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만 하면 복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는 거예요. 그래서 공경예배-관세음보살(恭敬禮拜-觀世音菩薩)하라 그러면, 우선 첫째는 모든 중생의 마음이 보이지 않으니 다만 공경하라는 뜻입니다. 그것이 바로 관(觀)에 해당하는 말씀이 됩니다. 또 세(世)라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는 차례가 있어요. 윗사람과 아랫사람 차례가 있고, 늙은이는 늙은이대로, 젊은 사람은 젊은 사람대로 차례가 있습니다. 그래서 절할때 절하고 모실 때 모시면 바로 복을 받게 돼 있다는 얘기입니다. 관세음보살에 예배(禮拜)를 드린다는 것은 바로 이 세(世)의 모습으로 행동하는 것을 말합니다. 늙은이들도 나이가 칠십,팔십이 될 동안에 얼마나 경험을 많이 했겠습니까? 그런분들은 무시하고 그러면 절대 복이 가질 않아요. 그래서 나이 많은 사람에게는 늘 예배해라 그런 말씀을 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보이지 않는 곳엔 공경하고, 보이는 데는 예배 드리면서 자기 머리를 숙여라 그런 말 입니다. 이것이 바로 관세음의 관(觀)과 세(世)의 모습에서 얘기를 하는 거예요. 그렇게 하면 반드시 음(音)을 통해서 복불당연(福不唐捐)하게 돼요. 관(觀)과 세(世)에서 공경하고 예배를 하니까 남들이 모두 “그 사람 참 착한 사람이다. 더할 수 없는 사람이다.” 이런 소리를 하게 되면 당연히 복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이런 내용은 모르고, 관세음만 공경예배하면 된다고 해서 날마다 관세음 상(橡) 앞에 앉아서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하고 빌어봐라 말입니다. 그렇게 해서 복을 주느냐 하면 안 준다는 거예요. 그러나 내가 얘기한 대로 그렇게 공경하고 예배하면 틀림없이 복을 받게 돼 있습니다, 저 보이지 않는 관(觀)의 세상에서 벌써 그것을 알고 여러분의 마음을 넓혀주고 다 도와줍니다. 관세음보살한테 도움 받는 것이 사실은 그렇게 쉽습니다. 사람들의 보이지 않는 마음에는 공경을 하고, 나이 많은 분들에게는 예배를 드리면 되는 거예요. 모든 사람에게 공경예배만 하면 귀신도 도깨비도 다 경배하게 되고, 절대 함부로 범하지 못하게 돼 있습니다. 공경과 예배의 힘이 그렇게 대단한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오늘부터라도 공경(恭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하늘의 보이지 않는데 절하는 거 모양으로, 다른 사람들의 속도 보이질 않으니 항상 공경만 하면 됩니다. “나는 좀 났습니다"하고 늘 상대를 공경하면 반드시 우주의 진짜 관(觀)에 서 내 마음을 지배하러 내려와서 도와줄 것입니다. 또 예배(禮拜)해야 됩니다. 우리 인간의 모든 차례를 따라서 나이 많은 사람을 모시고 예배 드리면, 그것이 바로 관세음께 예배 드리는 모습입니다. 그러면 많은 사람들이 “그 사람 참 착한 사람이다.”해서 취직도 될 수 있고 일도 성취할 수 있게 돼요. 그런 것이 바로 우리가 공경하고 예배를 했기 때문에 저 위의 진짜 관세음보살이 우리와 연결돼서 도움을 주는 모습입니다. 무진의(無盡意)야 약유인(若有人)이 수지육십이억-항하사보살명자 (受持六十二億 恒河沙菩薩名字)하고 “무진의(無盡意)야 약유인(若有人)이 수지육십이억-항하사보살명자(受持六十二億 恒河沙菩薩名字)하고” 이렇게 말씀이 나왔어요. “무진의야, 어떤 사람이 육십이억 항하사 보살의 이름을 받아 지니고"하는 얘기인데, 여기 무진의(無盡意)라는 것은, 사람이 하루를 사는데도 자기의 모든 노력을 다하고 살게 돼 있는 모습을 뜻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육십이억 항하사 보살의 이름을 받아서 지닌다, 이런 말을 했다 말입니다. 육십이억(六十二億)의 육(六)이 라는 것은 우리가 사는 육취(六趣)의 모습을 뜻하는 것인데, 지옥(地獄), 아귀(餓鬼), 축생(畜生), 수라(修羅), 천(天), 용(龍) 여섯 가지를 말합니다. 나중에 그것이 바뀌게 되면 육바라밀이 되는 거 예요. 그래서 고생이 즐거움으로 바뀌고, 또 즐거움이 고생으로 바뀌는 것을 얘기해서 육십이억(六十二億)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여섯 지옥의 모습은 이 우주 안에 가득 차 있습니다. 그래서 어디를 가도 고생을 피할 길이 없습니다. 고생 안하는 데가 없다는 것입니다. 만일 여기가 힘들다고 외국으로 이민을 갔다고 해봐요. 거기서도 땀 흘리고 힘들게 살아야 되는 것은 똑같습니다.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어디를 가도 마찬가지예요. 미국 같은 곳을 가보면 거기 교표들이 한국에서 하는 노력의 몇 배를 더합니다. 거기서도 죽기 살기로 기를 쓰고 노력해서 식구들 벌어 먹입니다. 잠잘 새가 어디 있습니까? 이 세상 어디를 가든 육취 속에 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그 육취가 변화돼서 육바라밀이 되어야 하는데, 예를 들어서 집에서 똑같이 살림을 살더라도 그 살림하는 데서 맛이 나면 그 사람은 벌써 육바라밀이 된 사람입니다. 같은 살림을 살아도 거기에 재미를 붙여서 즐겁게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하기 싫은 것을 어쩔 수 없어서 하는 사람도 있고 그래요. 어쨌든 인간은 여섯 가지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고, 그것을 벗어난다고 해도 또 고통이 옵니다. 마찬가지예요. 육십이억(六十二億)의 육(六)과 십이(十二)는 바로 그런 원리를 얘기하는 것입니다. 선과 악의 모습이에요. 그래서 언제는 좋았다가 또 언제는 나빴다가 그러는 겁니다. 그렇게 이 세상에 선과 악이 있고 육십이억(六十二億)의 원리가 있기 때문에, 이세상이 무너지면 또 다른 세상이 오게 되는 원리가 있습니다. 우리 인간의 모든 고생에도 한계가 있고, 또 즐거움에도 한계가 있듯이 이 세상도 육십이억(六十二億) 인구가 나오면 차츰 한계가 차서 무너지게 돼 있는 것입니다. 그런 깊은 내용까지 들어 있는 것이 바로 육십이억-항하사보살명자 (六十二億-恒河沙菩薩名字)라는 말씀입니다. 부진형(復盡形)토록 공양-음식의복(供養-飮食衣服) 과 와구 의약 (臥具醫弱)하면 어-여의운하(於-汝意云何)오 그 다음에 여기 보면 “부진형(復盡形)토록 공양-음식의복(供養-飮食衣服) 과 와구 의약 (臥具醫弱)하면 어-여의운하(於-汝意云何)오“ 그랬습니다. “몸이 마치도록 음식과 의복과 침구와 의약으로 공양한다면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느냐"하고물었거든요. 부진형(復盡形)토록, 목숨이 다할 때까지 음식과 의복, 와구와 의약으로 공양한다고 얘기했는데, 이게 뭘 상징해서 한 말씀인가 한번 생각들 해봐요. 여기서 음식은 뭐를 뜻해서 음식이라고 했습니까? 밥을 준 것을 얘기합니까, 그렇지 않으면 다른 어떤 음식을 얘기합니까? 이런 걸 짚고 넘어가야 돼요. 음식으로 공양해라 그랬는데, 뭘 공양하는 거냐 말입니다. 음식은 먹는 거죠? 먹을 때는 씹어서 먹어야 돼죠? 마구 먹으면 목구멍에 걸려 죽잖아요. 그래서 음식으로 공양한다는 것은 우리가 남한테 말을 할 때 걸리지 않는 말을 하라는 뜻이 됩니다. 내가 말하는 게 상대방에게 걸리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을 얘기해요. 우리가 하는 말을 음식에다가 비유를 한 이유는, 음식은 배를부르게 하는 것이잖아요? 마찬가지로 상대방에게는 내 말도 음식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무슨 말을 하면 상대방이 그 말을 들어서 맛있게 먹고 ‘참 고맙다.’ 이렇게 되어야 좋은 음식을 공양한 것이 됩니다. 그런데 말을 마구 하고 함부로 내뱉으면 언젠가는 그것이 체합니다. 그 말에 모든 사람이 거부감을 가지거나 하면 결국은 체하게 돼서, 옛날 같으면 멍석말이 당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음식으로 공양하라는 것은, 맛있는 음식을 씹어서 삼키듯이 그렇게 모든 말을 맛있게 해서 상대에게 넣어주라 하는 뜻입니다. 말 한마디 라도 걸림이 없게, 듣기 좋게 해주면 상대방도 기뻐하잖아요? 음식 공양은 바로 그런 것입니다. 그 다음에 의복 공양은 뭡니까? 추위에 떠는 사람을 생각할 수 있는데, 추위라는 것은 실제 겨울 추위를 말하는 게 아니라 외로운 사람을 뜻합니다. 사람이 외로우면 추운 거나 마찬가지 입니다. 그래서 의복을 공양한다는 것은 바로 외로운 사람을 도와주는 것을 얘기한 거예요. 있는 사람끼리 주고받고 하면 좋다고 하지만, 외롭고 힘든 사람은 혼자 추위에 떨면서 그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있다 말입니다. 그런 사람의 벗이 되어서 외로움을 덜어줄 때 그것이 바로 의복으로 공양하는 모습입니다. 그럴 때 관세음은 여러분의 모습을 볼 것이다 그런 얘기예요. 그 다음에 와구(臥具)는 뭘 뜻합니까? 누구나 한두 가지 잘못 없는 사람이 없어요. 큰 잘못, 작은 잘못 다 있습니다. 사람이 이 세상에 오게 되면 하루 몇 가지라도 잘못을 범하고 살게 됩니다. 그래서 와구(臥具)로 공양한다는 것은 남의 허물을 하나 하나 따지지 말고 전체 다 덮어주라는 뜻입니다. 며느리를 얻어보면 그 며느리가 매일매일 잘못하는 게 많아요. 그걸 자꾸 다독여서 착한 사람으로 바뀔 때까지 덮어주면 되는데, 잘못을 하나만 봐도 시비하고 둘 봐도 시비하고 그런다 말입니다. 그런 것을 덮어줄 때 와구 공양이 될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 의약(醫藥)은 뭐를 얘기했습니까? 이게 말은 쉽지만 공양하기가 참 힘든 것입니다. 의약은 건강하게 해주는 것인데, 그것은 뭐냐면 다른 사람의 오해를 풀어 주는 것을 얘기합니다. 사람마다 오해를 하면서 살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네가 왜 나보고 그래?” 하면서 시비하지 말고 오해를 풀어주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의약으로 공양하는 모습입니다. 사람은 오해에서부터 마(魔)가 일어나고 집안이 망가지고 많은 장애가 옵니다. 그러니 될 수 있는 대로 오해는 풀어줘야 됩니다. 오해가 일어나지 않도록 해주고,그걸 고쳐주는 것을 의약이라고 해요. 오해가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게 가장 문제가 되는 거예요. 옛날에 어떤 사람이 자기 집에 돌아와서 방문을 여니까 머리에 상투 튼 사람이 하나 누워 있어요. 자기 아내가 상투 튼 걸 데리고 드러누워 있는 것을 보고 죽이려고 들어갔습니다. 그때 참을 인(忍)자(字) 셋을 써 붙인 것을 보고 '한번 참자‘하고 다시 보니까, 자기 처제가 머리를 감고서 틀어올리고 있는 것을 모르고 죽일 뻔했다는 겁니다. 사람이 이런 오해들이 나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오해가 생겼으면 풀어주라는 거예요. 그런 것이 바로 의약(醫藥)으로 공양하는 모습입니다. 그리고 나서 또 얘기하기를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 선남자 선여인의 공덕이 많겠느냐?” 하니까 무진의보살이 대답 하기를 “공덕이 아주 큽니다"하고 얘기를 했습니다. “나는 아무리 무진의(無盡意)로 해서 노력해도 안 되는데 정말 그 공이 큽니다"하는데, 이 말은 우리 중생들이 한탄하는 소리입니다. 그렇게 하고 싶고, 다 아는데 안 된다 말입니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안되니까 한탄하는 거예요. 그래서 “세존(世尊)하 불언약부유인(佛言若復有人)이 수지관세음보살명호(受持觀世音菩 薩名號)하야 내지일시(乃至一時)라도 예배공양(禮拜供養)하면"이렇게 나옵니다.”만일 어떤 사람이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받아 지니고 한때만이라도 예배 하고 공양하면“ 그랬는데, 우리는 그런 거 저런 거 다 안 되니 다만 관세음보살께 예배공양하라 그런 얘기입니다. 귀신도 보이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이 공경해서 모셔다 놓고 떡도 해서 바치고 그러잖아요? 또 만약에 어른한테 잘못하면 매 맞으니까 덤비지 않는다 말입니다. 나라 대통령한테도 대들거나 하면 욕먹고 형무소도 가고 그럴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우리는 예배공양하는 것밖에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하면 그것이 곧바로 여러 사람들의 말을 타고 전달돼서 관세음의 가피를 입게 될 것이다 하고 여기서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그러면 이인복(二人福) 정등무이(正等無異)할 것이다. 그랬어요. 그게 무슨 말이냐면, 육십이억- 항사사보살명자((六十二億-恒河沙菩薩名字)를 가지고 목숨이 끝날때까지 노력한 사람이나, 다만 관세음보살을 공경하기만 한 사람이나 그 복은 똑같다 그런 얘기입니다. 그럼 여러분들은 관세음보살을 공경하는 것보다 더 쉬운게 없으니까 공경만 하라는 것입니다. 그건 아주 쉽다 말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그렇게 아주 쉬운 것만 해라. 그럼 나는 항상 너희와 같이 해서 절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어떤 일이 있어도 도와줄 것이다“ 하고 관세음보살이 약속하시는 자리입니다.
세존묘상구(世尊妙相具)시여 아금중문피(我今重問彼)하노니 불자하인연(佛子何因緣)으로 명위관세음(名爲觀世音)이닛고 오늘은 관세음품의 게송(偈頌)자리를 풀면서 장엄하는 겁니다, 세존묘상구(世尊 妙相具)시여 그러면, 부처님의 상호가 묘(妙)하구나 이렇게 새겨져 있는데, 이건 그런 뜻이 아니고 세상의 모든 만물이 전부 상호가 각각 다르다는 뜻입니다. 인간의 마음도 다 다르고, 모습도 다 다르다 하는 얘기입니다. 그렇게 세상이 구성된 이치를 말하는데, 세상 만물의 상호가 다 달라서 서로 알아보게 마련이고, 서로 얘기하게 마련이고 그런 것입니다. 또 사람마다 의사가 다다르기 때문에 서로 생각을 교환해서 합해서 하나로 변화되는 원리를 얘기합니다.그것을 세존묘상구(世尊妙相具)라고 했습니다. 대우주를 통해서 세존묘상구(世尊妙相具)를 얘기하면 바로 이 세상은 모든 만물이 다 각각 묘하게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다 하는 의미가 되고, 우리 인간에 대해서 세존묘상구(世尊妙相具)다 그러면 ‘내가 이때까지 산 것이 정말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모르겠다‘ 하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가 오늘날까지 살아온 것도 정말 어떻게 살았는지 모르겠고, 나이 사십, 오십,육십이 돼도 전부 세존묘상구(世尊妙相具)인 것입니다. 내가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살았는지 알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젊은 사람은 젊은 사람대로, 늙은 사람은 늙은사람대로, 모든 사람들이 자기 기획대로 산 것도 아니고 살다 보니까 장사도 하게 됐고, 또는 글도 배우게 됐고, 모든 것을 해서 오늘날까지 살아오게 됐다 하는 얘기 입니다. 구족묘상존(具足妙相尊)이 게답무진의(偈答無盡意)하사대 이 관세음품(觀世音品)에는 ‘내가 어떻게 하면 복을 받나?’ 하는 뜻이 들어 있기때문에 다른 품(品)하고는 조금 다릅니다. 이것은 ‘어떻게 하면 잘살 수 있느냐?”하는 것에 대한 응답을 이야기해 주는 품(品)입니다. 구족묘상존(具足妙相尊)이 게답무진의(偈答無盡意)한다는 것은, 그 응답은 바로우리가 노력한 만큼 반드시 오게 돼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열심히 일한 것만큼 대가를 받는다는 얘기예요. 일한 만큼 월급 받고, 또 기술이 좋은 만큼 대우를 받는다는 얘기예요. 일한 만큼 월급 받고, 또 기술이 좋은 만큼 대우를 받는 거나 같은 겁니다. 우리가 어떤 기술을 배워서 그게 완전히 익을 때까지는 얼마나 노력을 많이 합니까? 그래서 기술을 오래 연습해서 완벽한 사람은 거기에 해당하는 대가를 받고, 처음 온 사람은 조금 받고 그렇잖아요? 우리가 직원을 쓸 때도 그 사람이 얼마만큼 경력이 있느냐에 따라서 월급이 달라지죠? 그런 것과 마찬가지로, 구족묘상존(具足妙相尊)이 게답무진의(偈答無盡意)한다는 것은, 이 세상은 자기가 노력한 것만큼 대가를 받게 되더라 하는 얘기입니다. 법문을 하더라도, 자기가 경(經)을 많이 본 것만큼 설법이 나갈 것이고, 또 자기가 기도한 것만큼 그 힘이 나갈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남을 많이 원망하는데, 남을 원망하기 전에 먼저 자기를 돌아보라는 겁니다. 열심히 노력하면 반드시 상대방이 자기를 좋아하고 따르게 돼 있어요. 그런데 노력은 하지 않고 남의 것을 공짜로 뺏어 먹으려고 하니까 도둑놈으로 보여서 가까이 안 하게 되고 그런 거예요. 그래서 구족묘상존(具足妙相尊)이 게답무진의(偈答無盡意)한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너희가 한 것만큼 꼭 그대로 대가가 나오는 것이다. “ 그럼 이건 뭘 얘기하느냐면, 이 우주에는 생명(生命)이라는 게 있습니다. 그 생명을 우리 인간에게 불어넣어 주시겠다 하는 말씀입니다. 숨쉴 때마다 그 힘을 불어넣어줄 것이다 그런 뜻이 됩니다. 여청관음행(汝聽觀音行)의 선응제방소(善應諸方所)하라 “여청관음행(汝聽觀音行)의 선응제방소(善應諸方所)하라”는 말은, 여러분들이 이관음(觀音)의 행(行)을 잘 듣고 행()해 봐라 하는 얘기입니다. 그러면 관음(觀音)의 행(行)이란 무엇이 겠습니까? 관(觀)이라는 것은, 우리에게 보이지는 않지만 이 세상 모든 만물을 움직이게 하는 생명의 힘을 말합니다. 그 모습이 세상에 보이지는 않지만 그러나 그 생명의 힘이 있어서 우리가 그 생명에 따라서 살고 있는 원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게 보이지 않는 관(觀)의 모습입니다. 보이지 않는 힘이 보이는 힘보다 더 무섭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바로 여러분의 일생과 집안의 모든 문제를 관장해 주는 생명의 힘이 있다는 거예요. 그게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자신의 마음을 속이게 되면, 그 속인 것에 대한 대가가 반드시 오게 돼 있기 때문에 그 보이지 않는 관(觀)의 자리가 더 무섭고 대단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사람들이 겉으로 비위를 맞춰서 얘기하는 것을 들어봐요. 그러면 속이 빤히 들여다보이죠? “저놈은 속이 빤히 들여다보이다” 하는 생각이 들어갑니다. 그런 것이 다 관(觀)의 원리인데, 우리가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너무 허술히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스스로 자기 업보를 짓게 되는 거예요. 음(音)이라는 것은, 우리가 하는 말은 바로 모든 사람을 살려줄 수 있는 여건이 있습니다. 관(觀)도 여러 사람을 죽이고 살릴 수 있는 생명의 원리가 움직여지고있고, 음(音)도 비록 말이 입에서 나가지만 잘못해서 남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는 그런 문제들이 있습니다. 빚을 진 사람이 왜 도망가고 목매달아 죽는지 압니까? 빚쟁이가 때리는 게 괴로워서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와서 돈 달라 졸라대는 소리가 듣기 싫고 너무 괴로워 요. 그래서 목을 매러 가고 물에 빠져 죽으려고 하고 그러는 겁니다. 강아지를 때려보면 그걸 압니다. 강아지를 몽둥이로 때리지 않고 신문지로 때려봐요. 그러면 소리 와글거리는 바람에 강아지가 죽는다고 악을 씁니다. 음(音)의 문제가 얼마만큼 무서운지 아느냐 말입니다. 여러분은 자기 말을 녹음해서 들어봐요. 자기가 하는 말에 간사한 게 들어 있지는 않나, 또는 남을 비웃는 말이 섞여 있지는 않나, 한번 들어보라는 겁니다. 말에 비웃는 마음이 들어갈 때는 듣는 사람의 괴로움이 대단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마음이 보이지 않는다고 함부로 하지 말고, 입에서 나오는 말이라고 해서 절대 가볍게 해서는 안 된다 그런 얘기예요. 바로 그것을 선응제방소(善應諸方所)하라 그랬습니다. 보이지 않는다고 남을 흉보거나 미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같은 말을 해도 왜 성질을 내고 야단을 해서 상대방에게 괴로움을 줍니까? 괴로움 주지 않고 좋은 말로 해도 얼마든지 들을 건데, 악쓴다고 듣는 놈이 착하게 말한다고 안 듣겠어요? 삼국지에 보면 제갈공명(諸葛孔明)이 맹획을 잡을 때 일곱 번 잡았다가 일곱 번놓아준 얘기가 나옵니다. 칠종칠금(七縱七擒)이라고 유명한 얘기죠? 그때 누가 제갈공명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이 맹획을 한 번 잡았으면 그걸 죽이든지 꼼짝을 못하게 하든지 할 것이지 왜 또 놔줍니까?” 그러니까 제갈공명이 뭐라고 했느냐면 “그 사람의 마음이 진실로 바뀌어서 “당신께 항복합니다"할 때 그것이 진짜 항복이다“ 그랬다는 겁니다. 그래서 맹획을 일곱 번 잡았다가 일곱 번을 놔주니까 그때 서야 충성을 다했다는 얘기가 있어요. 사람을 대할 때도 그 사람 마음이 나한테 들어와서 진짜 고맙게 생각해야 되는 거예요. 상대가 윗사람이거나 높은 지위에 있으니까 그냥 억울해도 들어주고 그러는 건데, 제가 승리한 줄 알고 “내가 저놈을 혼을 냈더니 꼼짝을 못해"합니다. 그런 짓은 부처님 믿는 사람으로서는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에 선응제방소(善應諸方所)하라고 당부했습니다.선응제방소라는 것은, 써먹을 때 잘 써먹어라 그런 얘기입니다. 보이지 않는다고 남을 미워하거나 또는 말을 함부로 해서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거나 하면 안 되지 않느냐 하는 겁니다. 그런데 그 전에 무진의가 이렇게 물어봤죠? “불자하인연(佛子何因緣)으로 명위관세음 (名爲觀世音)이닛고"그랬습니다. 이 말은 “어떻게 하면 내가 해놓은 것을 모든 사람이 쓰게 됩니까? 내 이름을 여러 사람이 알고 내 뜻을 따르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하는 뜻입니다. 여러분들이 신경질내고 하는 것도 남들이 자기 뜻을 따라주지 않으니까 그러는 것이거든요. 자식들이 부모의 뜻을 잘 따라주면 “우리 자식밖에 없어"하고 좋아하는데, 그 뜻을 안 따라줄 때는 아무리 자기가 낳은 자식이라도, ‘아, 저놈의 자식 정말 골치 아파서 못살겠다’ 이럽니다. 그러니까 남들이 나의 뜻을 따르게 하려면, 아까 얘기한 대로 관음행(觀音行)을 하고 또 선응제방소(善應諸方所)의 모습으로 움직여야 되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다고 함부로 하지 말고 잘써먹으라 그런 말씀입니다.
홍서심여해(弘誓深如海)하야 역겁불사의(歷劫不思義)라 홍서심여해(弘誓深如海), 한 번 맹세한 것은 바다같이 깊어진다는 말인데 바다라는 것은 바로 소금의 짠맛을 상징한 것입니다. 소금의 역할은 바로 모든 음식에 맛을 내주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가 참고 견디면서 깊이 맹세를 변치 않게 하게 되면 그것은 소금이 돼서 많은 사람이 필요로 하는 모습으로 바뀝니다. 모든 사람에게 맛을 내주게 돼요. 그래서 없던 일거리도 생겨나게 되고, 또 많은 사람이 와서 그 사람에게 뭘 듣고 싶어하고 이렇게 돼서,우리 자신이 가치 있는 인간의 모습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관음행(觀音行)을 하고 또 선응제방소(善應諸方所)로 해서 제대로 쓰려고 노력하다 보니까 그런 결과가 나오더라 하는 얘기입니다. 남들이 자기 말을 따르지 않고 순종하지 않는 것은 바로 그 짠맛이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친구들끼리 얘기를 하다가 “에이, 그 사람 믿지 못해"하는 것도 그 사람이 맛이 없기 떄문에 그런 건데, 만약 그 사람에게 맛이 있으면 남들이 “그래, 네 말이 맞아"하고 따라 갑니다. 내외간에도 마찬가지거든요 아내가 남자에게 소금의 역할을 해봐요. 맛을 내줘 봐라 말입니다. 그러면 그 아내 아니면 죽고못삽니다. 그래서 사람은 맛을 내줘야 되는 거예요. 남자들도 그렇습니다. 자기가 아내에게 맛이 나게끔 해줘 봐요. 그 아내가 왼눈 하나를 바로 안 뜹니다. 자기 남편밖에 모르고 남편 올 때만 기다리고 이럽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남편 들어오는 게 겁이 나요. 맛이 없으니까, 쓴맛이 나고 먹기가 싫으니까 ‘아이구 , 오지 말았으면, 또 와서 무슨 소리 하려고?”이렇게 되는거예요. 바로 홍서(弘誓)를 못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한번 맹세를 깊이 해서 그런 짠맛의 변화가 나와야 되는데, 그게 안 되니까 남들이 따르질 않고 꺼리는 거예요. 옛날에 “여자는 하루 아침에도 밥상을 들고 열 두 가지 마음을 먹는다‘고 합니다.그래서 여자들이 어려운데, 이렇게도 마음을 먹었다 저렇게도 먹었다 하니까 맛이 안 날 수밖에요. 그 열 두가지 마음을 없애버리라 말입니다. 여자는 눈물도 열두가지 입니다. 좋아서 울고, 슬퍼서 울고, 남 운다고 울고, 자기 서러움에 울고 열두 가지 눈물이 나옵니다. 예전에도 내가 열 두 가지 눈물에 대해서 설법을 한 적이 있어요. 그럼 남자는 그렇지 않느냐 하면, 여자가 열 두가지 마음을 먹는데 남자인들 거기 안 따라가겠어요? 여자는 땅이니까 남자도 마찬가지로 그렇게 아침에 달라지고 저녁에 달라지고 합니다. 집에 가서 부인이 잘해 주면 ‘아, 우리 마누라 참 좋구나‘하고, 바가지 긁으면 ‘에이, 술이나 한 잔 하고 들어가야겠다‘ 이러죠? 그러니까 소금의 역할을 못하는 것입니다. 맛을 못 내요. 이제는 여러분들이 홍서심여해(弘誓深如海)로 살아봐라 말입니다. 큰 맹세를 바다와 같이 한번 해봐요. 그러면 그 마음은 소금의 역할을 해서 모든 맛을 내주게 될 것입니다. 친구한테 가도 맛이 나고 다 맛이 나게 돼요. 그러나 자기가 한번 맹세한 것을 훌렁 뒤집어 엎어서 아침 저녁으로 틀어지고 이러면 그 맛을 내기 어려운 것입니다. 그런데 또 역겁불사의(歷劫不思義)라고 얘기가 나옵니다. 몇겁(歷劫)을 지나가도 생각으로는 될 수 없다, 우리 생각으로는 안된다 그런 뜻이에요. ‘오늘은 남편에게 웃으면서 말해야지‘ 그랬는데, 남편 들어오는데 보니까 돈을 안 벌어왔거든요. 그러면 벌써 상이 찡그러져요. “돈 벌어줘야지! 나는 뭘 먹고 살라고!"이럽니다. 돈을 못 벌어왔으면 더 불쌍하게 생각하면 되는데, 그게 생각만으로 안 된다 말입니다. 역겁불사의(歷劫不思義)라, 아무리 우리가 생각을 해서 ‘이렇게 하겠다‘ 했지만 마음만으로는 그게 안 되더라는 말입니다. 앞에서 얘기한 것처럼 관음행(觀音行)을 했을 때 그게 되는 것이지, 관음행을 하지 않으면 그게 안 나온다는 거예요. 여러분들도 아마 어려울 겁니다. 관음행을 하지 않았으면 잘 안 될 거예요. 바로 역겁불사의 (歷劫不思義)이기 때문에 천 번, 만 번을 죽었다 깨어나더라도 생각만 해가지고는 소금의 맛을 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관음행을 해서 홍서심여해(弘誓深如海) 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 입니다. 시다천억불(侍多千億佛)하야 발대청정원(發大淸淨願)일세 홍서심여해(弘誓深如海)하고 나면 시다천억불(侍多千億佛)할 수 있다. 천억불(千億佛)을 모실 수 있다 그랬습니다. 그건 무슨 소리냐 하면,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보이지 않는 왕사성(王舍城)으로 되어 있습니다. 우리 눈에는 보이지는 않지만 우주 공간에 많은 장벽이 막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땅을 파보면 잘 알 수 있어요. 땅을 파보면 그 속에 전부 금이 죽죽 가 있어요. 그걸 지맥(地脈)이라고 합니다. 이 우주도 그와 마찬가지로 되어 있습니다. 땅에는 지맥이 있어서 그게 올라와 있기 때문에, 예를 들어서 강한 지맥이 올라온 데서 잠을 자거나 하면 허리가 아프기도 하고 여러 가지 병이 생기고 하는 그런 문제가 있습니다. 또 어떤 곳에는 터에 삼각형으로 해서 뾰족하게 된 자리가 있는데, 그런 데 잘못 들어가면 늘 병원에 다녀야 되고, 위험함 사고를 당할 수도 있고 합니다. 그런 것들이 전부 막이 쳐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막 때문에 재구가 막히기도 하고 금방 됐다가 또 안되고 그러는 것입니다. 그런게 지맥(地脈)의 모습이에요. 또 옛날부터 여드렛날은 집을 떠나지 말라고 하고 아흐렛날에는 집에 들어오지 마라 그런 얘기들도 합니다. 여드렛날에 집을 떠나면 가끔 실수하는 수가 있고,남한테가서 얘기하는데 엉뚱한 얘기가 나와서 손해를 보기도 하고, 또 아흐렛날에 는, 구(九)숫자에는 여러 가지 신(神)들이 움직이고 있다고 해서 혹시 객귀(客鬼)같은 게 묻어 들어올까 봐서 들어오지 말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이 이 경(經)을 보게 되면 그런 것이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아무 날 왔다갔다해도 상관이 없고, 나한테 와서 이렇게 법문 듣고 가면, 손(巽)이 있는데 못을박아도 이상이 없고, 어떤 방위로 이사를가도 상관이 없고, 다 상관없다 말입니다. 그건 왜 그렇습니까? 부처님께서 책임을 져주거든요. 법화경을 펴서 법문을 해주는데, 호법신장이 경(經)을 지키고 있다 말입니다. 만약에 내가 얘기한 것을 안 지켜주면 법화경이 무너지잖아요.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내가 무슨 백이 있어서 그러는 게 아니고, 바로 이 법화경이 백이라 말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와서 “이사를 갈까요, 말까요?” 물어봐도 ‘’그냥 이사가, 괜찮아’‘ 하잖아요. 그런데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아주 옛날 고옥을 헐었는데 난 부처님을 믿는다 하고 가서 헐었는데 원귀가 끓더라는 겁니다. 그 사람이 와서 “이거 왜 그렇습니까?”해요. 그래서 내가 “법화경을 읽었느냐?”물었더니 법화경은 읽지 않고 그냥 책만 모셔 놨다는 겁니다. 그렇게 하려면 차라리 “나는 설송(雪松)큰 스님제자요!” 이 한 마디 했으면 다 피해 줬을 텐데. 그냥 하니까 “네가 뭔데? 경은 똑같은 글자인데 무슨 상관이 있어?”하고 안 피해 준 거예요. 그 전에 공부할 때 보면, 지금은 별로 없지만 산에 서낭당 같은 데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같은 사람도 거기 들어갈 때는 그냥 문을 확 열고 들어가질 않습니다.“내가 오늘 저녁 하루 쉬어갈 모양이니까 너희들은 나를 좀 지켜 달라.” 그러면 거기에서 자도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그런 것도 없이 그냥 쑥 들어가서 자고 그러지 않았습니다. 여기 나한테 제자로 있는 사람이 어느 절에를 갔어요. 거기 부처님이 나무를 깍아 만들었는데, 제 생각에는 그 부처님이 대단하다고 생각을 해서 삼배를 드렸답니다. 그랬더니 문짝이 와글와글 움직이고 그러거든요. 왜 그랬겠어요? 자기 스승님이 법화경을 읽었는데, 거기 목불(木佛)에 뭐가 있다고 절을 해요? 미친놈이지. 법화경을 열심히 보던 사람이 거기 오니까 신중들이 놀랐잖아요. 그래서 문이 찌그러지고 그랬던 일도 있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이, 우리 인간은 아무도 건드리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건드릴 수가 없어요. 법화경을 읽고 올바로 행동을 하는데, 뭐가 두렵다고 누구한테 뭘 물어보고 그럽니까? 그건 안 됩니다. 그런 어리석은 짓은 절대 하지 말라 말입니다. 나는 이때까지 법당에 무슨 공양을 지어 올린다, 뭐를 바친다 그런거 안 해봤습니다. 아니 부처님,화신불 (化身佛)이 밥 한그릇에 팔려요? 어디 밥 얻어먹을 데가 없어서 거기서 얻어먹습니까? 이 우주 세상이 방편으로 돼 있어서 전체가 다 먹을 것이고, 모두 다 갖추어져 있는데 무슨 그런 게 필요있어요? 부처님이 왜 그걸 먹겠답니까? 안그래요? 세상의 모든 것을 당신 마음대로 움직이는 분인데, 인간이 땀 흘려 지어놓은 따뜻한 밥 한 그릇에 팔리는 부처님이 어디 있겠습니까? 다만, 우리의 마음에서 ‘저희들이 밥을 먹으려고 하는데, 이 우주에 부처님이 계시지 먼저 한 그릇 떠놓고 먹겠습니다‘ 해서 공양하는 것이라면 모르지만, 그렇게 해서 자기 공을 이룬다고 할 것 같으면 이 세상에 공 이루지 못할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그런 어리석은 짓은 나는 안 합니다. 안 해도 됩니다. 법문해서 사람도 많이 모이고 그랬잖아요. 그러니까 그런 헛된 짓은 하지 마라 말입니다. 그래야 우리가 시다 천억불(侍多千億佛)할 수가 있어요. 시다천억불(侍多千億佛)한다. 천억(千億)의 부처님을 모시고 받들었다고 했는데,여기 천(千)이라는 말씀은 모든 것이 막혀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 막혀 있는 자리를 무너뜨리지 않고 그대로 써먹어서 모든 사람에게 편리를 도모해 주는 것을 얘기합니다. 그러니까 그걸 없애는 것은 안 되고, 천(千)을 그대로 두고 우리가 마음대로 들어가는 모습을 말합니다. 억(億)하면, 여러 사람들과 내가 마음이 서로 맞지 않지만, 그 맞지 않는 것을 능히 모실 수 있게 되는 것을 얘기합니다. 그러니까 어려운 일이 나면 어려운 대로 그것을 모시는 겁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너무 어렵고 힘들 때 ‘ 부처님 감사합니다. 저한테 뚫고 나갈 수 있는 힘들 주시려고 이런 고통을 주셨으니 감사합니다. 저를 버리지 않으셨군요.’이러면 좋은데 “부처님도 없어. 나는 못 살아“ 이러면 안 되는 거예요. 여러분들 어렵고 힘들 때마다 감사할 줄 아셔야 됩니다. 부처님이 우리 같은 중생을 얼마나 불쌍히 보셨나 말입니다. 힘들고 어려운 법(法)을 꺠닫게 해주시는 것이 얼마나 대단할 일입니까? 그런데 조금 힘든다고 죽는다 산다 하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그럴 때일수록 ‘내가 노력이 부족하구나, 노력하자‘ 하고 열심히 노력해봐요. 그럼 그게 무너집니다. 그렇게 해서 거기서 힘을 하나 얻는 것입니다. 뭘 얻어도 얻어집니다. 재수가 트여도 트일 테고, 병이 나아도 낫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바로 말할 때 천(千)그래요. 여러분들은 부처님 믿으러 왔다가 무슨 조그만 고통이 오면 ‘에이, 부처님 믿어도 마찬가지인데, 나 안 믿어, 가야지'합니다. 그러지 말고 열심히 믿고 들어가봐요. 그러면 그 고(苦)에서부터 하나 얻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천(千)의 모습입니다. 억(億)하면, 이 세상 모든 것이 우리 마음에 맞는 게 하나도 없어요. 그래서 항상 마음이 불안해서 ‘이 세상에 내 마음에 맞는게 없으니 살아야 되나, 죽어야 되나?‘하는데, 그런 생각 하지 말라는 겁니다. 마음에 안 맞을 때마다 ‘내가 얼마나 부족 하면 여러 사람들 마음에 맞게 못사나? 부처님, 내일부터는 절대 내 뜻을 낮추고 머리를 숙이고 모든 사람을 따라서 경배하고 모시겠습니다.’ 그런 생각하고 들어가 봐요. 그것이 바로 무너집니다. 그러면 서로 금방 되는 거예요. 그렇게 쉬운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도 다 시다천억불(侍多千億佛)할 수가 있습니다. 그렇게 시다천억불을 하면 발대청정원(發大淸淨願)이 됩니다. “네 원은 바로 청정한 원(願)이 될 것이다“ 그랬는데, 여러분들이 뭐든 해놓은 것이 천 년 만 년 내려갈 수 있게 된다는 뜻입니다. 이 경을 읽을 때 내가 지금 얘기한 것을 마음으로 새기면서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마음으로 새기면서 보면 그 다음에 변화 올 것까지도 알게 됩니다. 그 전에 내가 어떤 사람한테 “경을 몇 분에 읽었나?”하고 물으니까 “십 분 걸렸습니다“ 그래요 그래서 내가 속으로 ‘이 미친 놈아!’그랬습니다. 나중에 읽다 보면 제가 스스로 생각이 날테니까 더는 말을 안 했습니다. 여러분들 경을 자꾸 빨리 읽는데, 그러지 말고 부처님 말씀이니까 차근차근 읽어봐요. 우리가 경을 존중히 생각한다면 그 말씀도 존중히 생각하고 읽어야 됩니다.그러니까 진정한 마음을 갖고 또박또박 읽어라 말입니다. 나는 신도님들에게 기도를 주고 경을 읽으라고 합니다. 그렇게 줘놓고서 ‘ 저 사람이 실수를 하지 않고 부처님 가피력을 입어야 될텐데‘ 하고 한번 들여다봅니다. 그 마음에 들어가서 보면, 그 사람이 눈으로는 경을 읽으면서 생각은 다른 데가 있습니다. ‘장독을 안 덮었는데‘,’남편이 왜 아직까지 안 오지?’ ‘저 놈의 일이잘 돼야 되는데‘ 이러면서 보고 있어요. 그것을 보고 내가 속으로 ‘야, 참 딱하다. 경을 읽으라고 했지, 누가 남편 오는 거 걱정하라고 했나? 올 남편이 안 오고 어디갈까봐서?’ 그럽니다. 나중에 그 사람을 불러서 물어봤어요. “경을 잘 봤나?” “예, 잘봤습니다.”.”그런데 왜 장독 덮는 생각했어?” “비가 올까봐 그랬습니다.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이러이러고 놀랍니다. 여러분을 맨날 입으로만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하다가 이렇게 법문을 들어 보니까 관세음보살을 부르는 이유를 알겠죠? 사람들이 마음도 없이 그냥 입으로만 “관세음보살!”하고 복 준다고 부르는데, 복은 무슨 복을 줘요? 안 줍니다. 지금 얘기한 것 같이 그렇게 해야 복을 주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그렇게만 하면 무엇이든 스스로 되게 돼 있다 말입니다. 옛날에 어느 스님이 지나가는데 나이 많은 노인네가 몸도 아프고 힘도 들고 해서 스님에게 물었습니다. “제가 이렇게 힘이 드는데 어떻게 하면 좋아지겠습니까?” “관세음보살을 자꾸 부르십시오.” “알았습니다. 관세음보살만 부르면 됩니까?”“아, 그럼 좋지요.” 그런데 이 노인네가 스님이 뭐라고 부르라고 했는지 잊어버린 거예요. 그래서 며느리를 부릅니다. “예, 아가! 아까 스님이 뭐라고 그러든?” 그런데 이 며느리가 늙은이가 앉아서 주책만 부리고 그러니까 밉거든요. 그래서 제대로 안 가르쳐주려고 “씩뚝꺽뚝, 그러고 갑디다"하고 얘기를 해줬어요. 이 노인네가 그날부터 맨날 “씩뚝꺽뚝"“씩뚝꺽뚝"하고 부르는 겁니다. 그랬는데도 진짜 관세음이 움직였다는 얘기가 있어요. 그게 왜 그러냐면 진정으로 하니까 되는 거라 말입니다. 여러분들도 관세음보살이 아니라 다른 이름으로 바꾸어 불러도 됩니다. “싹뚝꺾뚝!”해도 됩니다. 진짜입니다.
아위여약설(我爲汝略設)하노니 문명급견신(聞名及見身)하고. 아위여약설(我爲汝略設)하노니 문명급견신(聞名及見身)하고 심념불공과(心念不空過)하면 능멸제유고(能滅諸有苦)하리라"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는데, 그 이름만 들어도 몸을 본 것에 미칠 것이다. 그리고 너희가 마음에 부질없이 행하지 않으면 모든 고통을 멸(滅)하게 된다.” 이런 말씀을 했습니다. 아까 얘기한 것처럼 발대청정원(發大淸淨願)이 그때는 너희가 어떻게 되는지 간단히 얘기를 해주겠다. 그런 말씀을 하신 겁니다. 문명급견신(聞名及見身)은 뭘 얘기하느냐면, 그 이름만 들어도 그 모습이 여러분한테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어떤 사람이 와서 “자네 나하고 사업 좀 하려나?” 하면 벌써 그 사람이 될 것인가 안 될 것인가가 나타납니다. 그런 게 문명급견신 이에요. 또 어떤 사람이 사위를 봐야 되는데, 누가 “우리 아들하고 혼인시키세“ 그러면 벌써 사위 얼굴이 나타납니다. 이렇게 생기고 어떤 사람인지 알아집니다. 산에 가서 기도할 필요가 뭐가 있습니까? 문명급견신인데, 바로 자기 눈에 보인다 말입니다. 어떤 사람을 기다린다고 앉아 있으면 오는 게 보입니다. 이런 것은 쉬운 거예요. 바로 그런 것과 마찬가지인데, 여러분이 그렇게 되면 바로 문명급견신이에요. 뭘 하든, 하다못해 여러분이 “음식 장사를 하면 됩니까?”하고 나한테 물어보는데, 왜 그걸 물어봅니까?”누가 여러분한테 “음식 장사 해봐라 “했으면 그 장사가 될지 안될지가 보이게 돼 있어요, 그런데 어떻게 할 때 문명급경신이 되느냐 하면 관음행을 할 때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관음행을 하면 홍서심여해(弘誓深如海)하게 되고 역겁불사의 (歷劫不思議)하게 되는데 뭘 근심할 게 있느냐 말입니다. 관음(觀音)의 행(行)만 해라, 그럼 바로 보일 것이다 그런 얘기예요. 심념불공과(心念不空過)하면 능멸제유고(能滅諸有苦)하리라. “심념불공과(心念不空過)라” 믿음을 가져라 그런 말인데, 쓸데없이 아니다 그렇다 판단도 하지 말고, 될까 안 될까 그런 생각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내가 한 말 틀림없으니, 한번 믿었거든 믿음을 변치 마라“ 하신 거예요. “그러면 능멸제유고 (能滅諸有苦)해서 너한테 오는 고통이 다 스스로 멸해질 것이다“ 그랬습니다. 나도 이것을 여러분에게 이렇게 얘기를 해주고 가르쳐주는 것뿐이지, 가르쳐줘서 여러분이 행을 하면 좋지만 안 해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소를 끌고 물가에 가서 물을 먹이려고 해도 그 소가 먹지 않으면 억지로 못 먹이는 거예요. 마찬가지로 내가 여러분에게 아무리 이것을 가르치고 싶어도 여러분이 관음(觀音)의 행(行)을 하지 않으면관세음품(觀世音品) 백 번 해봐야 소용없는 것입니다. 능멸제유고(能滅諸有苦)라고 했는데, 그럼 어떤 고(苦)들이 무너지는지 그 고(苦)무너지는 것을 한번 봅시다. 가사흥해의(假使興害意)하야 추락대화갱(推落大火坑)이라도 염피관음력(念彼觀音 力) 하면 화갱변성지(火坑變成池)하며 “가령 어떤 사람이 나를 해하려고 해서 불구덩이에 들이밀려고 해도, 관음의 힘을 입으면 그 불구덩이가 바로 못으로 변한다“ 라고 했습니다. 이건 무슨 얘기냐면, 우리가 만약에 전생의 업보를 가지고 왔다고 해봐요. 그러면 하는 것마다 불에 타서 없어져 버린다 말입니다. 돈을 벌면 돈이 불에 타고, 뭐든지 하면 다 타요. 그것이 그냥 없어지는 게 아니라 마음에서 불이 나서 자기가 스스로 다 팽개치게 마련이라는 겁니다. 친구들끼리도 자기가 좀 참으면 될 건데, “야, 이 자식아!나 안 해!” 하고 팽개쳐버리고 이래 가지고 모든 것이 불에 타버려요. 전생 업보가 그렇게 무섭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이생에 업보 짓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내생이 편한 거예요. 그런데 우리 인간이 오른 어깨만 내 놓고 살거든요. 아마 나부터도 그럴 겁니다. 나도 다 털었다고 하더라도 나한테 있는 거 홀랑 벗어놓고 보면 창피해서 얼굴을 들 수 없는 게 있을지도 모릅니다. 나는 늘 그런 생각이 납니다. 그 전에 부모 속인 생각도 나고 그래요. 내가 아주 어렸을 적에 어머니가 다 돌아가시게 됐는데, 그때 어떤 여자하고 만나기로 약속을 했어요. 그런데 돌아가시는 어머니를 돌보는게 중하냐, 그 여자하고의 약속이 중하냐 했을 때, 여자는 나중에 만나도 되니까 어머니가 위중하시면 곁을 지켜드려야 되잖아요? 경우는 어머니 곁을 지키고 있어야 되는게 옳아요. 그런데 마음에서는 자꾸 가자고 잡아당기는 겁니다. 그때 내가 아버님께 거짓말을 했습니다. “지금 빨리 갔다오지 않으면 안 될 일이 생겼습니다. 꼭 좀 갔다와야 되겠습니다.” “응, 빨리 갔다와라.” 그렇게 부모도 속이고 염치없는 행동도 서슴지 않게 하는 그런 세상이 또 한 군데 있더라는 겁니다. 바로 그런 문제 때문에 업보를 짓는 것 아니겠어요?” 지금 생각해도 얼굴이 화끈 할 때가 있는데, 이런 것이 전부 우리가 오른 어깨를 감추고 사는 모습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혹시 그런 업보를 졌더라도, 관음력(觀音力)을 입게 되면 그 업보도 다 무너질 수 있다는 말씀을 여기서 하신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다고 남 흉보지 않고 또 자기 입에서 나오는 말이라고 해서 함부로 하지 않으면 그 관음(觀音)의 행(行)에 의해서 반드시 변화를 받게 돼 있습니다. 남자는 소리를 꽥 지르면 산이 쩌렁 우는데, 여자는 바가지 깨지는 소리가 납니다. 보살들 한 번 해봐요, 누가 업보를 더 짓는가. 남자는 그래도 큰소리 지르면 산이 쩌렁 하고 울리니까 업보를 덜 짓는지도 몰라요. 보살들은 악이 나서 소리를 지를 때는 양철 두드리는 소리 아니면 바가지 깨지는 소리가 납니다. 그 전에 내가 파열시키는 소리에 대해서 얘기를 했어요. 우리의 말에 의해서 막이 터지게 되면 장애가 많이 옵니다. 그래서 될 수 있으면 그렇게 하지 말라는 것인데,여자들이 성질 안 내고 얘기를 하면 그 목소리가 복을 짓게 합니다. 참 듣기가 좋습니다. 그런데 성질만 냈다 하면 그 복 지은 것을 와르르 무너뜨리고 만다 말입니다. 남자도 마찬가지죠. 그런데 남자는 여자하고는 반대입니다. 남의 귀에 대고 살살 “응, 그래그래."이러는 데서 그 막이 뚫어집니다. 여자는 악을 팍 쓰는 데서 막이 찢어지면서 상처를 받고, 남자는 소리를 꽥 지를수록 괜찮습니다. 그러나 속살거리면서 “이랬어, 저랬어“ 하고 살금살금 하면 그런 사람은 백발백중 찢어집니다. 그게 다릅니다. 그래서 여자는 크게 소리지르는데서 업보를 짓는 것이고, 남자는 속살거리고 이러는 데서 업보 짓는 것이고 그래요. 남자는 소리질러도 괜찮지만, 귓속에다 대고 “그래그래"이러면 그 막이 무너지기 쉬워요. 가사흥해의(假使興害意)하야 추락대화갱(推落大火坑)이라도 염피관음력(念彼觀音力)하면 화갱변성지(火坑變成池)한다는 것은, 전겁에 자기가 어떤 잘못한 게 있더라도 관음력(觀音力)에서 다 해결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전겁이 없어집니다. 아까 능멸제유고(能滅諸有苦)한다고 그랬지요? 전생 업보까지도 다 무너지더라 하는 얘기입니다. 혹표류거해(惑漂流巨海)하야 용어제귀난(龍魚諸鬼難)이라도 염피관음력(念彼觀音 力)하면 파랑불능몰(波浪不能沒)하며 이건 뭐냐 하면, 여러분들 영가천도를 한다, 또는 절에서 사십구재를 지낸다 이러지요? 사십구재라는 것은 자손이 아침 저녁 손발을 씻고 촛불을 켜고 열심히 해서 그 정성이 하늘에 닿을 때 영가(靈駕)가 마흔 아홉 발자국을 뗄 수가 있어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못 뗍니다. 혹표류거해(惑漂流巨海)한다는 것은 모든 영이 흘러서 바다처럼 돌아다니고 이럴 때를 얘기하고, 또 용어제귀난(龍魚諸鬼難)이라는 것은 모든 귀신들이 난리를 치고 와글 거리고 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게 되면 집안이 풍비박산이 나서, 남자는 맨날 술집에 가고 여자도 춤추러 다니고 그럽니다. 혹표류거해(惑漂流巨海)하야 용어제귀난(龍魚諸鬼難)의 원리에서 그런 문제가 나오는 것인데, 그런 것도 바로 관음의 힘으로 해결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관음의 행을 못하잖아요? 그래서 내가 여러분들보다 조금은 관음의 행을 하기 때문에 제도를 하고 화신을 시켜주는 거예요. 뭘 그걸 가지고 사십구재까지 갈 게 어디 있어요? 바로 시켜줍니다. 그래서 영가가 마흔 아홉 발자국 떼면 가잖아요. 이게 경에 다 나와 있는 것입니다. 부처님을 믿고 경을 보고 공부하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데, 그저 기복으로 빌기만 하고 이러면 너무 하지 않느냐 말입니다. 여러분들도 조금만 더 노력하면 스스로 관음력(觀音力)이 움직일 수 있습니다. 그런 원리들을 여기에 다 말씀을 해 놓으신 거예요.
혹치원적요(惑値怨賊擾)하야 각집도가해(各執刀加害)라도 염피관음력(念彼觀音力)하면 함즉기자심(咸即起慈心)하며 “우리가 원적(怨賊)을 만나서 칼을 가지고 나를 치려고 하더라도 관음력(觀音力)으로 바로 그 사람에게 자비로운 마음이 들어간다"하고 얘기가 나옵니다. 예를 들어서 남의 땅을 조금씩 파 들어가서 경계를 무너뜨려 가지고 자기 땅을 만든다든가, 또 누구한테 돈 꿔줄 때는 기분 좋게 꿔주고 받을 때는 박하게 받는다든가, 또는 남이 빚에 몰려서 집을 파는데 그걸 싸게 팔게 해서 산다든가 하면 거기에서부터 상대에게 원한이 생길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그 원한이 각집도가해(各執刀加害)가 되는데, 그런 짓은 절대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죄와 업보를 받는다 그런 얘기예요. 그런데 그런 업보를 지어서 상대가 칼과 작대기를 가지고 나를 찔러 죽이려고 덤비더라도 관음력(觀音力)으로부터 그것이 없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왜 그랬던가? 내가 저 사람 땅을 싸게 사려고 한 것이 잘못이다‘ 깨닫고, ‘내가 잘못했다.다시는 안 그러겠다‘ 하는 마음만 먹어도 그 마음은 그 사람한테 갑니다. 그리고 감언이설로 꼬셔 가지고 싸게 팔도록 만든 그 말 자체도 참회하면서 ‘정말 다시는 그런 말을 하지 말자. 혀를 끊어내는 한이 있어도 하지 말자‘ 하는 생각이 들어가면, 바로 그 자리에서 상대방 마음에 자비(慈悲)의 마음이 생기게 됩니다. 기자심(起慈心)이 돼요. 상대방이 나를 해치려고 했었는데, ‘아, 내가 왜 그랬나? 그만두자'하고 용서가 된다 말입니다. 이게 얼마나 대단한 겁니까? 만약에 어떤 집이 경매가 나가서 그걸 싸게 사서, 그 사람들 안 나간다고 막 딱지 붙여 가지고 나가라고 내쫓고 이런 짓을 하면, 그게 그때는 좋았을지 모르지만 그걸 당한 사람들은 마음 속에 칼을 품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 바로 혹치원적요(惑値怨賊擾)하야 각집도가해(各執刀加害) 인데, 그럴 때도염피관음력(念彼觀音力)하면 함즉기자심(咸即起慈心)한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관(觀)과 음(音)의 모든 힘이 같이 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도 그런 생각이 있으면 지금이라도 참회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칼을 든 마음들이 없어질 것입니다. 이 자리를 읊을 때, 여러분들도 그런 일이 없었나 한번 생각해 봐요. 만약 그런 일이 있다면 비록 여러분들 앞에 칼과 작대기를 들고 덤비지는 않지만, 누군가는 마음속에 칼을 품고 있을 것입니다. 그 칼은 보이지 않는 마음을 찌릅니다. 마음을 찌르면 그 아픈 건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아내가 도망을 간다, 사랑하는 아들이 속을 썩인다 할 때 얼마나 가슴이 아픈가 생각을 해봐라 말입니다. 금방 그런 가슴 아픈 일들이 생깁니다. 그러면 자기는 조상을 원망합니다. ‘나는 뭐 잘못한 것도 없는데 조상 산소 자리를 잘못 썻나, 조상이 잘못됐나?’ 이럽니다. 자기가 잘못해 놓고 원망을 합니다. 그런 원망을 하니까 업보가 점점 가중되는 거예요. 그럴수록 내가 참회를 하고 관음력(觀音力)이 같이 하면 그 고통도 해결될 수 있다는 말씀을 여기 해놓으셨습니다. 혹조왕난고(或遭王難苦)하야 임형욕수종(臨刑慾壽終)이라도 염피관음력(念彼觀音 力)하면 도심단단괴(刀尋段段壞)하며. 그리고 혹조왕난고(或遭王難苦)하야 임형욕수종(臨刑慾壽終)이라도, 왕으로부터 어려운 일을 당해 가지고 형틀에 매달려서 죽게 됐어도, 그래도 염피관음력(念彼觀音力)하면 도심단단괴(刀尋段段壞)해서 다 부서져 나갈 것이다 하고 말씀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 왕난고(王難苦)라는 것이, 내가 어떻게 마음을 먹었기에 형틀에 매달릴 정도로 되느냐는 겁니다. 이것은 바로 남을 능멸한 죄, 윗사람을 속인 죄를 뜻합니다. 왜 그것이 죄가 되느냐면, 자기보다 나이가 많으면 뭔가 하나라도 경험을 더 얻었을 거라 말입니다. 그 사람이 행은 못했더라도 보고 아는 것은 많을 겁니다. 그래서 ‘향당(鄕黨)은 막여치(莫如齒)’라고 했어요. 촌에 가면 나이가 어른입니다.어른이라는 것은 경험이 많다는 얘기예요. 그런데 나이가 많은 어른을 능멸했다 말입니다. 스승을 능멸했다든지, 부모를 능멸했다든지 이런 죄를 얘기하는 것입니다. 또 나이가 많은 사람이 실수한 틈을 타서 그 사람을 괴롭힌다든지 이러는 것을 왕난고(王難苦)라고 합니다. 여러분들도 혹시 어른들 속 썩이지 않았어요? 어른들의 말을 거역하거나 어른들의 말을 판단하고, 자기 주장을 내세우고 이러지는 않았습니까? 그러면 왕난고가 됩니다. 보살님들 혹시 시어머니 속이고 숟가락 주고 엿 사먹거나 그런 적 없었어요? 또 아버지 몰래 땅문서 훔쳐다가 놀음한 거, 이런 것도 다 왕난고에 걸리는 겁니다. 왕난고에 걸렸다 하면 임형욕수종(臨刑慾壽終)이 돼요. 항상 자기 마음속에 ‘언제나 죽나?’ 이런 생각밖에 없습니다. ‘더 살아서 뭘 하나? 죽어야 돼“ 이렇게 됩니다. 나 같은 사람도 죽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여러분들 고통은 많지, 그것을 내가 다 해결 해 줄 수는 없지, 그럴 때는 ‘이런것도 해결 못해 주면서 살아서 뭘 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여러분들은 나를 믿고 왔는데, 내가 매인열지(每人悅之) 해서 모든 분들 마음을 기쁘게 할 수 없을 때는 참 고통스럽습니다. 그럴 때 마다 ‘아 , 내가 힘이 모자라니 산 속으로 들어가자. 그래야 다른 사람이 또 나와서 더 열심히 해서 이 사람들을 구할 거 아니냐? 내가 왜 여러 사람들의 가는 길에까지 고통을 주나?‘ 이런 생각까지 들곤 합니다. 왕난고다 그러면, 윗사람에게 괴로움을 주거나 비판했거나 하면 그 업보는 자기도 모르게 항상 한탄만 하게 되는 문제가 나옵니다. 전부 자기가 해놓고 한탄하는 거예요. ‘내가 왜 이랬나?’하면서 정말 괴로운 나날을 지내게 되는 것이 왕난고라고 해요. 그래서 임형욕수종하게 되는데 , 마치 형틀에 갇혀서 목숨을 마칠 때와 같은 그런 문제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여기를 보면 하나하나가 전부 다 이유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럴 때도 염피관음력(念披觀音力)해라, 그러면 그 모든 고통이 다 무너질 것이다 하고 말씀을 했습니다 혹수금가쇄(或囚金拁鎖)하야 수족피축계(手足被丑械)라도 염피관음력(念彼觀音力)하면 석연득해탈(釋然德解奪)하며. 그리고 또 혹시 쇠고랑을 차고 들어가서 수족을 다 묶어놓고 하는 때가 오더라도,관음의 힘만 받으면 석연득해탈(釋然德解奪)한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이건 무슨 소리냐면, 다른 사람을 말이나 경우로 때려잡아서 그 사람의 자유를 묶어놓을 때를 말하는 것입니다. 채무에 몰리는 거, 또는 신문기자 같은 사람들이 꼼짝 못하게 해놓고 이러는 거, 형사나 검사 이런 사람들이 없는 죄를 덮어 씌워 가지고 꼼짝 못하게 만들어놓고 뇌물 받아먹고 하는 거, 이런 문제들이 옛날이나 지금이나 있어요. 권력을 가지고 그런 행동들을 많이 합니다. 옛날에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어떤 부자가 “내가 수수 한 말 줄 테니 수수 한 말 가져와라“ 이랬다 말입니다. 그런데 끝에 말을 여물지 않게 했어요. 그러니까 모르는 사람은 그거 수수 한말 주고 나중에 수수 한 말 가져오라는데 얼마나 좋아요? 그래서 수수 한 말을 갖다 먹습니다. 나중에 수수 한 말을 잦다 주러 가니까 “야, 이놈아, 누가 수수 한 말 갖다 수수 한 말 가져오랬냐? 수소 한 마리 가져오란 말이다. 내가 분명히 너한테 수수 한 말 주고 수소 한 마리 가져오라고 하지 않았느냐?“ 이럽니다. 만약에 말한 대로 안 갖다 주면 두들겨 패고 할 테니까 어쩔 수 없이 수소 한 마리를 갖다 바쳤다는 거예요. 그 전에도 그런 일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권력 있는 사람들, 뭐 어디 다닌다 이러는 사람들이 그런 경우가 많았는데, 그런 사람들이 나중에 그만두면 수족피축계 (手足被丑械)가 돼요. 손 발을 다 묶어놓은 거나 똑같다 그런 얘기입니다. 일할 것도 없어집니다. 부처님은 없는 것을 얘기하는 법이 없어요. 다 경에 있다 말입니다. 그래서 이 경은 비유하자면 대전통편(大典通編) 이나 같은 거예요. 정말 분명히 해놨습니다. 자기가 한창 권력 있을 때 권력을 이용해서 남을 괴롭히고 그런 사람들 보면 전부 손발 다 묶어놨다 말입니다. 경험해 봐요. 틀림없습니다. 나중에는 몸에 병이라도 들어서 수족을 묶어놓지 그냥 두는 법이 없어요. 이것이 바로 관(館)과 음(音)의 변화가 있기 때문에 그런 문제가 나는 것입니다. 주저제독약(呪詛諸毒藥)으로 소욕해신자(所欲害身者)라도 염피관음력(念彼觀音力)하면 환착어본인(還㒂於本人)하며.. 주저제독약(呪詛諸毒藥)한다고 했는데, 이 주(呪)라는 것은 쉽게 얘기해서 악담을 한다. 비방을 한다 이런 거와 같습니다. 주저제독약으로 소욕해신자(所欲害身者)해도, 즉 저주하는 말과 모든 독한 약으로 내 몸을 해하려고 해도 염피관음력(念彼觀音力)하면 환착어본인 (還㒂於本人)한다고 했습니다. 환착어본인한다, 자기한테 되돌아간다고 그랬거든요. 그게 무슨 소리냐면, 예를 들어서 내가 남을 어떻게든지 못살게 만들려고 온갖 짓을 다 했다 말입니다. 옛날에 왕궁에도 보면 부적을 써 붙인다, 뭐를 한다 그러고, 또 상대의 얼굴을 그려놓고 활을 쏘고 이런 얘기가 있잖아요? 그걸 저주한다고 하죠? 그리고 제독약(諸毒藥), 모든 독약이다 그러면 악담 같은 것을 얘기합니다. 저주하고 악담하고 이래서 소욕해신자(所欲害身者)가 되면 바로 남을 해할 생각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또 말씀이 염피관음력(念彼觀音力)하면 환착어본인(還㒂於本人)한다고 그랬습니다. 자기가 상대를 저주했는데, 그것이 상대에게 가기 전에 다시 자기에게로 되돌아와서 편안함을 느끼게 된다는 뜻입니다. 자기가 내놓은 걸 도로 거뒀기 때문에 그렇다는 거예요. 이건 무슨 얘기냐면, 남을 저주하고 악담을 했으면 그것이 결국에는 업보가 돼서 자기한테 고통이 올건데, 그때 바로 관음력()하게 되니까 자기가 저주하고 악담했던 것이 되돌아와서 다시 그것을 썩혀서 쏟아버리게 해 준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남을 저주하고 욕을 한 것이 그 사람에게 가지 않는 거예요. 거기 갔으면 내가 업보를 짓게 될 거 아닙니까? 상대에게 안 가고 다시 나한테 돌아와서 환착어본인(還㒂於本人)하니까 업보를 안 짓게 된다는 말씀 입니다. 우리가 저주를 하고 악담을 하면 분명히 자기 한테는 큰 업보가 돌아오게 돼 있어요. 그런데 그렇게 업보가 돼서 돌아오기 전에 먼저 자기가 저주한 것을 잘못했다고 사과하게 되면, 그 저주와 악담이 자기한테 되돌아오면서 모든 것이 없어진다는 얘기입니다. 여기 이자리는, 악담한 사람에게 악담이 다시 되돌아간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나한테 악담을 한 사람이 있다면 그 악담은 바로 그사람한테 되돌아갈 것이다. 염피관음력(念彼觀音力)으로 되돌아 갈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그건 관음(觀音)의 힘이 아닙니다. 그건 복수죠. 이런 구절은 분명하게 해석하기가 힘이 듭니다. 남을 저주하고 독을 품고 했을 때는 나한테 얼마나 괴로움이 오면 그랬겠습니까? 그러면 내 마음도 얼마나 불편했겠느냐 말입니다. 그래서 남한테 그렇게 저주를 했던 것인데, 만약 저주 한 것이 그대로 상대에게 가도록 놔두면 그것이 큰 업보가 돼서 나에게 고통이 올 것 아닙니까? 그러나 그 업보를 받기 전에 염피관음력(念彼觀音力)으로서 환착어본인(還㒂於本人)해서 나한테 되돌아오게 되니까 상대에게는 아직 안 갔다 말입니다. 그래서 그것이 오히려 선(善)으로 바뀌어 나가게 되는 그런 말씀을 한 것이 이 자리입니다. 주저제독약(呪詛諸毒藥)으로 소욕해신자 (所欲害身者)라도염피관음력(念彼觀音力)하면 환착어본인(還㒂於本人)한다는 말이 이렇게 풀립니다. 이 구절을 잘못 풀면 ‘악담을 하면 다시 악담한 사람한테 되돌아간다'라고 생각 할 수 있는데, 그렇게 되면 관음(觀音)의 힘이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내가 악담을 할 때는 얼마나 고통이 컸으면 그랬겠습니까? 그것이 상대에게 가면 결국은 내가 큰 업보를 받게 되니까 염피관음력(念彼觀音力)해서 그 악담을 다시 거두는 것을 말합니다. 혹우악나찰(或遇惡羅刹)과 독용제귀등(毒龍諸鬼等)이라도 염피관음력(念彼觀音力)하면 시실불감해(時悉不敢害)하며 “흉악한 나찰이나 독한 용이나 여러 가지 악귀들을 만나더라도 관세음을 염하는 거룩한 힘이 그것들이 해하지 못하게 한다“고 했는데, 이런 것은 우리가 많은 살상(殺傷)을 할 때를 말합니다. 살상을 너무 많이 하게 되면 모든 귀신들이 나한테 움직여지게 돼서 그 고통이 대단히 심한 거예요. 옛날에 어떤 사람이 길을 가는데 보니까 구렁이가 까치 새끼를 집어먹으려고 나무로 올라가요. 그래서 활을 딱 쏴서 구렁이를 떨어뜨렸는데, 때려도 죽지를 않으니까 불에 태우는 겁니다. 그때 구렁이가 불에 타면서 그 기름이 툭 튀어서 이 사람 머리에 붙었거든요. 그게 빨간 점이 돼서 아무리 닦아도 안 없어지는 겁니다. 그러고 나서 얼마 있다가 아들을 하나 얻게 됐는데, 자기 머리의 점은 없어지고 그 아들한테서 붉은 점이 솟아나왔어요. 그 아들이 나중에는 큰 역적이 돼 가지고 가문의 삼족(三族)을 멸하게 됐다는 그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구렁이 하나 죽인 것 이 그런 업보를 받은 것입니다. 까치를 꺼내 먹으려던 그 구렁이는 상생상극(相生相剋)의 원리가 있어서 그렇게 했던 건데, 그게 안됐다고 아주 무자비하게 죽였잖아요. 그 과보로 멸문지화(滅門之禍)를 당하게 된 것입니다. 또 사냥을 즐겨 해서 짐승을 많이 잡아 죽인다든가, 낚시질을 할 때도 먹지도 않을 것을 자꾸 잡아서 죽인다든가 해서 살상(殺傷)을 많이 한 사람에게는 반드시 독용제귀등(毒龍諸鬼等)이 움직여지게 됩니다. 독용(毒龍)이라는 것은, 재주를 부리되 꼭 남을 해치는 재주만 부리는 것을 말해요. 누구를 죽이는 재주, 못살게 하는 재주, 이런 재주들만 부리는 것이 독용(毒龍)입니다. 그리고 제귀등(諸鬼等)하면 모든 귀신들이 움직인다는 뜻입니다. 그런 것들이 오게 되니까 얼마나 고통스럽겠습니까? 예를 들어서 남이 뭐를 얘기하더라도 꼭 자기가 대답할 수도 없는 그런 말만 들리게 됩니다. 숨통을 아주 답답하게 만드는 말만 들려요. 이런 것이 독용제귀등이 움직이는 모습인데, 그래서 친구하고 얘기를 하다가도 답답해서 가슴을 탁 쳐 가지고 말도 못하겠고 그런 고통이 온다 말입니다. 상대가 벽을 문이라고 내밀 정도로 막들어오니까 얼마나 답답합니까? 그런 고통을 받게 된다는 얘기예요. 짐승을 함부로 살생하고 그랬으면 자기한테는 그런 독용제귀등이 옵니다. 마음이 답답하고, 누구한테 어떻게 말할 수도 없는 고통이 와요. 남편하고 얘기해 봐도 ‘아 ,저놈의 남편이 어쩌자고 나한테 이렇게 말을 하나? 내 사정은 몰라주고 정말 답답하다‘ 하게 되고, 울화증이 생길 정도의 그런 고통이 오는 것을 독용제귀등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런 것이 올 때도 바로 염피관음력(念彼觀音力)하라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게 남을 괴롭히고 함부로 살상하고 한것을 참회할 때는 그 관음(觀音)의 힘이 움직이면서 시실불감해 (時悉不敢害)가 됩니다. 그래서 독용재귀등이 나를 해하지 못한다 그런 얘기예요 약악수위요(若惡獸圍繞)하야 이아조가포(利牙爪可怶)라도 염피관음력(念彼觀音力)하면 질주무변방(疾走無邊方)하며. 또 여기 보면, 악한 짐승들이 무섭게 악물면서 우리에게 덤비더라도 염피관음력(念彼觀音力)하면 질주무변방(疾走無邊方) 한다, 다 도망가버린다고 했는데, 이 약악수위요(若惡獸圍繞)라는 것은 어떤 자리를 말하겠습니까? 약악수위요한다는 것은, 금수(禽獸)와 같은 행동을 하는 것을 뜻합니다. 만약에 남자가 어떤 여자를 궁지에 몰아넣어 가지고 자기의 욕심을 채운다든가, 어려운 사람들을 그렇게 몰아 가지고 자기 배를 불린다든가, 또는 여자가 남자를 꼬셔 가지고 돈을 뺏고 이러는 문제들이 약악수위요 (若惡獸圍繞)입니다. 그런데 이아조가포(利牙爪可怶)다 그랬습니다. 그렇게 되면 모든 사람들이 저를 잡아먹으려고 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만약 그런 행동을 했으면 그 사람은 항상 자기 마음에 두려움을 느끼게 해요. 그게 이아조가포(利牙爪可怶)입니다. 두려움에 시달려서 꿈에도 가위가 눌리고, 항상 뒤에 누가 쫓아오는 것 같고, 늘 이런 고통을 받게 된다는 겁니다. 이런 것이 전부 그 사람 행동하는 것에서 부터 그림자처럼 쫓아다니면서 고통을 받게 하는 모습들입니다. 그러나 그럴 때에도 염피관음력(念彼觀音力)하면 질주무변방(疾走無邊方)할 것이다 그랬습니다. 두려움과 공포를 느끼게 하는 것들이 다 도망갈 것이다. 그런 얘기 입니다.